경북 출신의 3선인 한나라당 Q의원이 자신의 후원회 명의로 개설해 놓은 통장을 통해 98년 한해동안 거둬들인 후원금 액수는 탈탈 털어 800만원이 채 못 됐다. 그가 한해전인 97년 일년간 모금한 후원금 총액은 1억5,000만원에 달했다. 기업인 출신인 그는 소수의 지인들로 후원회를 꾸려왔는데, 정권이 바뀐 뒤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독지가 그룹이 유명무실해졌다. 정권교체의 명암(明暗)으로만 보기에는 지나치게 왜곡된 돈 흐름이었다. 극단적 사례이긴 하나 그의 경우는 우리정치의 낙후된 후원(혹은 후원회)문화를 지문찍듯 보여준다.국회의원들이 정치자금을 마련하는 루트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후원회를 통한 공개 모금이고, 다른 하나는 음성적 자금 조달이다. 후원회가 활성화해 있는 의원들은 정기적으로 후원회원 모임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예외적이고, 대다수 의원들은 「후원의 밤」이나 「출판 기념회」등 1회성 행사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으게 된다.
이런 후원회 행사에는 동료의원들의 상호부조와 지역구 사람들의 십시일반, 친지들의 정성도 한몫 하지만 소속 상임위와 연결된 기관과 단체, 기업 등의 「눈도장 찍기」 봉투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환경노동위 소속의 한 의원은 『알짜배기 상임위인 재경위 산자위 건교위 정무위 의원들의 후원회에는 기름기 도는 관계자들이 줄을 서고, 국방위 의원들의 행사에는 별들이 단체 출현하는 식』이라며 『국회를 출입하는 정부기관의 몇몇 연락관이 관련 상임위 의원의 행사를 미처 챙기지 못해 징계를 당하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는 것도 상임위 유관기관과 의원간의 사슬관계가 파생한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갖다내는 봉투는 엄밀히 말해 로비자금에서 떼어주는 돈이다. 게다가 눈에 띄지 않게 얼마든지 분산해 낼 수도 있다. 들어오는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 보니 쓰는 과정도 제멋대로다. 의원 후원회의 모든 수입과 지출 내역은 누락·축소·과장 없이 회계장부에 기재하고 이를 근거로 선거관리위원회에 회계보고토록 돼 있으나 실제로 이를 지키는 의원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수도권 재선인 국민회의 P의원의 후원회 운영방식은 이런 풍토에서도 예외적인 모범사례로 꼽힌다. 최초로 광고모금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부터 지로모금을 하고 있다. 2,500~3,000명의 회원이 일년에 몇만원씩 돈을 보태는데, P의원은 이를 위해 연간 1만7,000여장의 DM을 발송한다. P의원은 『여러명의 의원들이 노하우를 배워갔으면서도 정작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고 있다』며 『품이 많이 들고 관리가 까다롭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후원금은 법적으로 의원 개인의 돈이 아니라 후원회의 돈이고, 후원회가 계좌를 관리토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다. 후원금으로 차바꾸고 가구 들이고 집 넓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여권 실세 고위 인사들이 받는 영수증 없는 후원금이다. 정경유착의 고리가 되는 검은 돈 거래는 우리 정치사가 쓰여진 이래로 늘 있어온 공공연한 비밀이면서도 검찰의 포토라인이 설정될 경우에나 사실로 확인되는 정도다.
불법 정치자금 창구는 상임위 활동을 통해서도 확보가능하다. 엄청난 이권이 걸린 사업에는 떡고물이 없을 수 없고, 속기록도 작성되지 않는 소위원회 활동 등 소수가 밀실에서 처리하는 사안은 고물 덩어리가 커지게 마련이다. 건교위 소속의 한 의원은 『속기록이 작성되는 전체회의 활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며 『특정 의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 떠들다가 입을 다물면 반드시 무슨 일이 있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시민입법국장은 『특정 정당이나 의원 개인에 과도하게 후원금이 편중돼 정치적 유착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그래야 소액다수의 건전한 후원문화가 가능해 진다』고 지적했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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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개선안
중앙선관위가 최근 내놓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몇몇 기업이 과도하게 정치자금을 부담하는 폐단을 막고 여야간 형평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름의 방안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정안은 연간 3억원 이상의 법인세를 내는 기업이 법인세의 1%를 정치자금으로 내놓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3억원 이상의 법인세를 내는 기업은 총 800개 정도인데, 이렇게 하면 연평균 600억원정도의 정치자금 확보가 가능해 진다는 게 선관위의 계산이다.
경제사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기업체들이 부담하는 정치자금 규모는 연간 600억~7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법인세 1% 부담은 따라서 적정한 규모의 정치자금 확보, 소수 기업에서 다수 기업으로 부담을 분산하는 효과, 정경유착의 고리를 차단할 수 있는 토대 마련 등을 가능케 해 준다는 게 선관위측의 주장이다.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정치자금을 낼 때마다 「적게 내면 찍히는 것 아니냐」는 걱정에 경쟁 기업이 얼마를 내는지 신경써야 하는 등 피곤한 상황이 되풀이 된다』며 『법인세 1%로 공식화 하면 옆구리 찌르기와 이권 교환을 매개로 형성되는 검은 돈이 대부분인 우리 정치자금 문화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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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100달러이상 기부금 수표로만
미국 독일 등 선진 각국의 정치자금 규제는 엄격하다. 일정 금액 이상은 반드시 수표를 이용하도록 하는 등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치자금의 흐름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면 정경유착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자금은 용도에 따라 크게 두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하드머니는 특정 선거의 특정 후보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자금이고, 소프트머니는 포괄적인 당운영비 형태의 자금이다.
후보자 개인에게 내는 하드머니는 1인당 한도액이 1,000달러(약 116만원)로 정해져 있다. 또 100달러 이상은 현금이 아닌 수표로만 가능하다. 검은 돈이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미국의 경우 소프트머니가 문제가 되고 있다. 기부액에 상한선이 없고 사용처도 모호한 경우가 종종 생긴다. 개인의 선거자금으로 슬며시 흘러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현재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중인 정치자금 개혁안도 소프트머니를 대폭 규제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정치자금 일반에 대한 공개의무는 없다. 그러나 선거운동비용과 개인비용은 반드시 공개토록 돼 있다. 특히 200파운드(약 37만1,000원)를 넘는 정치헌금을 한 기업은 기부처와 금액을 이사보고서에 기재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독일은 각 정당이 정당의 재산에 관한 회계보고서를 연방하원 의장에게 제출토록 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연 2만마르크(약 1,252만원)를 넘는 기부에 대해서는 기부자의 성명 주소 및 기부금 총액을 기재토록 규정해 놓았으며 1회당 1,000마르크(약 62만6,000원)를 초과하는 익명기부는 받지 못하도록 돼 있다. 프랑스는 기부총액을 규제하고 있는 데 개인의 경우 5만프랑(약 930만원)을 넘을 수 없으며 정치단체 이외의 법인은 아예 기부금을 낼 수 없다. 또 1,000프랑(약 18만6,000원)이상은 현금기부를 금지해 반드시 수표로 내도록 하고 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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