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그때 그사람] 앞치마두른 `영원한 농구여왕' 박찬숙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그때 그사람] 앞치마두른 `영원한 농구여왕' 박찬숙

입력
1999.05.01 00:00
0 0

제18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가 5월2∼9일 일본 시즈오카에서 열린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본선출전 티켓 한 장이 걸린 대회를 앞두고 농구계는 70년대중반부터 10여년간 명센터로 아시아를 주름잡던 박찬숙(40)씨와 같은 대들보가 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84년 LA올림픽 은메달의 주역이자 6∼10회 ABC대회에 참가, 6회 준우승이후 내리 4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던 「영원한 농구코트의 여왕」 박찬숙. 전성기에 190㎝의 큰키와 빼어난 골감각, 균형잡힌 몸매와 예쁜 용모까지 갖춰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그도 벌써 불혹이 됐다. 숭의여고 1학년때인 75년 국가대표로 발탁, 콜롬비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미스 월드바스킷으로 뽑혔던 앳된 모습은 이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은퇴후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변함없는 몸매와 세련된 옷차림, 짧게 자른 시원한 헤어스타일은 「미시」족을 연상시킬 정도로 상큼한 멋을 자아낸다.

박씨는 85년 서재석(46)씨와 결혼해 이듬해 낳은 딸 효명이는 중학교 1학년이 됐고, 96년에 늦둥이 아들 수원이를 얻었다. 『딸은 아빠를 닮고, 아들은 나를 닮아 좋다』는 그는 근황을 묻자 『밥짓고 빨래하며 청소한다』며 전업주부임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8월 감독을 맡았던 염광여중 농구부가 해체돼 간혹 해설가로 방송에 나서는 것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을 놓은 8개월은 그에게 10년처럼 느껴졌다. 비로소 팬과 선수라는 관계가 아닌, 인간대 인간으로 각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사회」를 배웠기 때문이다.

『앞에서 「온 국민에게 힘을 준 분인데 꼭 도와드려야죠」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실제 어려운 일이 닥치자 냉정하게 돌아설 때 크게 실망했다』는 그는 『그러나 인생공부를 많이 하게 됐고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면서도 『농구는 내 인생의 전부이고 결코 농구와 떨어질 수 없다』며 『농구와 관련해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일꾼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씨는 84년 10회 상하이대회서 중국과 결승전을 앞두고 식중독에 걸려 출전이 불가능했지만 『코트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뛰어 1점차의 짜릿한 승리를 거둔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최근 여자농구가 남자 프로농구에 밀려 인기가 떨어지고 국제대회 성적도 부진한데 대해 매우 안타까워 한다. 『세계수준도 높아져 이제는 나같은 선수가 두서너명은 있어야 국제무대에서 통할 텐데…』. 한국여자농구를 부흥시킬 후배스타들이 나타나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게 박씨의 바람이다. 글 임종명기자 ljm@hk.co.kr 사진 홍인기기자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