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달아 오르고 있다. 문만 열었다 하면 주가지수가 하루가 멀다하고 20~30 포인트씩 상승하고, 시중의 여유자금은 마치 제 몸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불길속으로 달려드는 불나비처럼 주식시장으로 모여들고 있다.단위형 투자신탁이다 뮤추얼 펀드다 하며 번쩍거리는 이름의 금융상품이 고객을 유혹하고 있으며, 「한국을 몽땅 사버리자」며 노골적인 야심(?)을 드러내는 펀드까지 등장하고 있다.
물론 투자자들의 마음속 한 구석에는 언제나 불안감이 있다.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혹시 다 날리는 것은 아닐까」. 평상시 같으면 이런 정당한 불안감이 시장에 대한 훌륭한 제동장치로 기능한다.
그러나 작금의 주식시장은 이런 불안감이 「누구는 어떤 주식을 사서 몇십배씩 남겼다더라」라는 전설의 유혹앞에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리는 형국이다. 이것이 거품이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혹자는 산전수전 다 겪고 이론과 실무 모두에 밝은 합리적인 펀드매니저들이 눈을 부릅뜨고 시장을 지키고 있는데 거품은 무슨 거품이냐며 반론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펀드매니저들이 밤잠 안자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깨어 있는 진정한 이유는 이런 광풍 속에서 어떻게 하면 패가망신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를 걱정하다 보니 잠도 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같이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돈을 보며 한숨짓는 펀드매니저의 모습은 아이러니다.
이번 광풍의 기원은 작년 9월경에 있었던 금리정책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때 경제팀은 그 이전까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유지하고 있던 고금리 정책에서 금리인하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명분은 산업기반 자체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조조정의 재원을 정부재정에서 금융쪽으로 전가하려는 속셈이 작용했을 수도 있고, 단순히 구조조정 자체가 정치권에게는 「별 재미없는 정책」으로 판명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일부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앞장서서 금리인하를 주장하고, 정작 금통위는 가만히 있는데 주무부서도 아닌 재경부가 정책의지를 천명하고 나섰다. 그 결과 작년말 주식시장은 한증막같은 열기속에서 겨울이 추운 줄도 모르고 한바탕 축제판을 벌였다. 10배, 20배씩 돈을 벌었다는 신화가 탄생한 것도 이 때이다.
필자는 경제팀이 그 당시 금리인하 정책으로 선회한 것은 정책실수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구조조정의 고삐를 더욱 죄었어야 했다. 백보를 양보해서 부분적인 경기부양의 필요성 때문에 어느 정도 금리인하가 필요했다고 해도, 주식시장이 과열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이후에는 금리를 조심스럽게 관리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들어서도 금리인하라는 정책실수를 그대로 유지하는 일관성(?)을 보였다.
작금의 거품은 이러한 일관된 실수의 결과이다. 오죽 했으면 작년에 금리인하로의 정책전환을 외쳤던 정부출연연구소조차 저금리 정책기조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을까. 지금이라도 정부는 적절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만일 우물쭈물하다 시기를 놓쳐 제2의 금융위기를 맞게 되면 그 때는 우리 경제가 정말로 버티기 힘들다. 첫번째 위기때에는 재정이 건실하고 실업률이 낮은 상황에서 맞았기 때문에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때와 상황이 너무도 다르다.
서울의 잠 못이루는 밤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은 비단 펀드매니저들만이 아니다. 아직도 금리안정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는 경제팀이야말로 밤을 새우며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축제의 뒤끝이 얼마나 지저분한가를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부교수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