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걸작 24년만에 첫공개 -우리 현대미술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는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1913~1974)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24년 만에 일반에 공개된다. 갤러리 현대는 5월 4~30일(무휴) 열리는 김환기 25주기 추모전에 이 작품을 비롯, 미공개작 「하늘과 땅」 「십만개의 점」 등 40여점을 선보인다.
「어디서…」(영어제목: Where, In What From, Shall We Meet Again)는 70년 6월 한국일보사가 창설했던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작품. 김환기 사후 1년 만인 7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단 한 차례 공개됐을 뿐 10차례가 넘는 회고전에서도 한 번도 전시되지 않았다.
205X153㎝ 크기로 농담(濃淡)이 조금씩 다른 푸른 계열의 색점을 찍고, 주위를 에워싸는 조그만 사각 테두리를 만들어 마치 모자이크처럼 촘촘하게 연속해 그린 이 점화(點畵)는 58년작 「산과 달」(국립현대미술관 소장)과 더불어 김환기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미술대상전」 수상작이 발표됐던 70년 6월 10일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당시 뉴욕에 머물고 있던 김환기는 조세형 본사 워싱턴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작품 소재를 이산(怡山) 김광섭(金珖燮·1905~1977)의 시 「저녁에」에서 얻었음을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시를 읽고 그동안 한국을 떠나와 있으면서 간절히 그리워진 친구들 생각을 하게 됐다. 점 하나하나를 찍을 때마다 그리운 친구들 얼굴을 연상하곤 했다. 물론 그중에는 7년 동안 세상을 떠난 많은 친구들도 들어있다』
그의 작품은 당시 미술계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생활이 어려워 제대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뜬소문만 무성했던 김환기가 7년 만에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순수추상회화의 새로운 세계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미술은 겨우 앵포르멜(추상미술의 한 형태)의 포화 상태에서 벗어나 시각적 추상, 기하학적 구성의 추상이 시도되던 과도기였다.
「어디서…」는 캔버스에 일정한 바탕을 만들지 않고 바로 천 자체가 바탕이 됐다는 점이 특징. 특히 묽은 안료를 사용, 천의 조직 속으로 스며든 안료가 마치 화선지 위에 먹으로 그린 그림의 효과를 보이고 있다.
오광수 환기미술관장은 『생지에 바로 찍어 나간 색점 하나하나의 크기는 극히 우연에 의해 태어난 영롱한 생명체』라고 표현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너무 고요하고 또한 너무 정확하여 그 진동들은 영혼에 내재하는 위대한 정적을 표현한다」고 평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오만가지 상념 속에 찍은 점이 우울하게 녹아나오지 않고 오히려 경쾌하게 표현됐다는 점.
친구로부터 「한국미술대상전」수상 기사와 함께 편지를 받은 날 김환기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친구는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25주기 추모전은 갤러리 현대 외에도 환기미술관(5월 4일~7월 4일, 월 휴관), 원화랑(5월 5~30일, 무휴)에서도 동시에 열린다.
환기미술관에선 그의 작품의 근간이랄 수 있는 조선조 백자를 소재로 한 「달과 항아리」 「달과 매화와 항아리」 「여인과 항아리」 등 작품을 모아 「백자송」(白磁頌)이란 작품전을 갖는다.
원화랑에선 초기 서울시대(53~56년)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독」 「새」 등 주옥 같은 소품들과 뉴욕시대 점화 20여점을 전시한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김환기 작가세계와 백자」 오광수 환기미술관장(5월 8일 오후 1시30분)
□「김환기의 항아리와 시」 김열규 문학평론가(6월 5일 오후 1시30분, 이상 환기미술관)
□환기의 예술세계, 조요한 전 숭실대 총장(5월 14일 오후 2시, 갤러리 현대)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