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결혼이라는 사슬에 묶인 일을 잊을 수 있을까. 특히 나는 아내를 만나 자유를 박탈(?)당하기까지 4개월간이 내 인생 중 가장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시간이다.그러니까 30년전 6월22일 아내를 처음 만나 그해 9월4일 약혼하고 10월26일에 결혼을 했으니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장가를 든 셈이다. 그때 내 나이 31세. 늦바람이 무섭긴 무서웠나 보다.
당시 동양방송 프로듀서로 고연전 OB 농구경기 중계를 위해 장충체육관에 갔던 나는 고려대 OB선수이자 국가대표센터였던 친구 이경우와 그의 부인을 만났다. 그때 그의 부인은 어떤 여자와 같이 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마음에 드는 인상이었다. 경기를 끝낸 친구가 샤워하는 동안 중계차를 보낸 후 두 여성과 함께 다방에 가 그녀에게 「첫 사랑의 맛」이라는 뜻의 칼피스를 시켜줬다.
그날 나는 친구부부와 그녀를 근사한 식당으로 초대해 외상까지 그어가면서 식사대접을 했다. 그 후 우리는 매일 만났다. 그러던 중 일이 하나 생겼다. 청평에 놀러갔다 오던 날 비록 일방적이었지만 그녀도 날 좋아한다는 믿음 아래 했던 키스가 문제가 되었다. 그녀가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고민끝에 방송국 깃발이 달린 지프를 몰고 그녀가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학교로 쳐들어갔고 만날 날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다시 만난 날 『교장선생님이 나를 며느리 삼고 싶어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이 여자를 놓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근처 호텔 스카이라운지로 가서는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요 살까요』라고 물었다. 『떨어지면 죽겠죠』라는 그녀의 대답에 『그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밀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뒤 청혼을 했다. 그녀는 『죽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좋겠죠』라며 애교스럽게 공포(?) 분위기의 청혼을 받아줬다.
그때 그 새침하고 예쁘던 아내는 교직에서 은퇴해 자원봉사를 하며 살고 있다. 30년전보다 많이 늙었지만 마음은 더욱 예뻐진 아내를 보며 결혼이라는 사슬에 묶인 일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일이며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김 현·여행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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