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1월 30일 밤의 한 쇼를 기억한다. 5공 정권에 의해 동양방송(TBC)이 KBS로 강제흡수되면서 마지막을 장식한 쇼였다. 「TBC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이 쇼에는 TBC에서 사랑을 받았던 연예인들이 총출연해 억울한 현실과 쓰라린 고별을 노래했다. 출연자는 눈물을 흘렸고 시청자도 울었다. 신군부와 5공 정권의 언론탄압은 그해 봄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711명의 언론인 강제해직과 최고의 경제지였던 서울경제신문을 포함한 44개 언론사의 강제통폐합으로 시대의 불빛을 껐다. 그 해는 우리의 근대 언론사상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스런 해였다.■일련의 언론탄압사건을 주도한 인물은 같은 언론사 출신의 허문도씨였다. 그는 후에 통일원 장관이 되었다. 최근 케이블TV 불교텔레비전(btn)이 허씨를 신임 사장으로 영입했다. 일각에서는 허사장 선임과 함께 전두환 전대통령 등 「5공세력」이 btn을 교두보로 삼아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 전대통령은 97년 사면된 후 각종 법회에 참석하는 등 불심(佛心)잡기에 힘을 쏟아 왔다. 최근에는 정치적 본적지인 대구와 합천도 방문했고, 장세동 전 안기부장의 국회의원 출마설도 떠돌았다.
■허씨의 btn 사장 선임에 대해 언론개혁 시민연대가 26일 강한 어조의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허씨는 5공 시절 언론인 강제해직과 언론사 통폐합을 주도했다. 그는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는 언론사 사장 자격이 없으며, 언론사 사장으로 복귀한데 대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양심적 불교인들은 명예를 걸고 허씨의 사장 선임을 저지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btn 시청거부 등 대대적 국민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허씨가 언론희생의 대가로 5공과 함께 누린 영화(榮華)의 세월이 짧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언론탄압을 주도했던 19년전은 국민의 기억에서 사라질 만큼 긴 시간도 아니다. 허씨를 다시 언론사 사장으로 복귀하게 하는 불교계의 속사정이 딱하고, 그것이 종교적 자비심의 발로라면 상식인으로서는 그 도저함을 측량할 길이 없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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