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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한 순간] 양귀자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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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한 순간] 양귀자 「모순」

입력
1999.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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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여주인공 안진진의 아버지는 술꾼이다. 그가 등장하는 제4장 「슬픈 일몰의 아버지」를 쓰던 지난 해 어느 봄날, 아침부터 작업실에 처박혀 원고지 50여매 되는 분량을 마쳤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귀가하기 위해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득 책상의 유리판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다른 날보다 일의 속도가 아주 빨랐기에 스스로의 기분이 매우 쾌청했다고 믿고 있었던 나는 그것이 그냥 물이 아니고 눈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을 바쳐야 했다.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내가 그토록이나 몰두해서 그려낸 인물은 다름아닌 나의 아버지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다시 컴퓨터를 켜고 내가 쓴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어디쯤에서부터 내 무의식이 나의 아버지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리고, 몇 가지를 알아냈다…. 가장 먼저 혐의가 가는 것은 「술꾼」이라는 단어였다. 그러고 보면 제4장의 첫 문장인 『이제 아버지를 말할 차례다. 아버지를 말하는 것은 나에겐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부터 이미 징후가 엿보였다. 나의 아버지는 술꾼의 신화만 남기고 일찍 세상을 버려서 어린 딸로 하여금 아버지라는 존재를 경험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 작가의 일차적 경험이 글쓰기의 기반이라는 말을 다 신봉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경험이 투철하면 자유로운 변용이 수월하다는 점에서 「아버지」라는 허구의 인물을 묘사하는 일은 내게 항상 난해한 과제였다. 그리고 곧 바로 결정적인 단서가 나타났다. 『아버지는 타인에 의해 한번도 정확히 읽혀지지 않은 텍스트였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모독이었고 또한 아버지의 불행이었다』라고 나는 쓰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가감없는 나의 고백이었다. 작가였으면서 제대로 아버지의 삶을 변명해주지 않았던 나, 술꾼으로 부유하며 살았으되 치욕에는 그토록 예민했던 내 아버지에 대해 나는 늘 비껴가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생각하니 「모순」의 아버지는 안진진의 아버지였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또한, 꿈은 많으나 이룰 현실은 한없이 초라했던 그 시절 우리 모두의 아버지였다./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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