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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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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정국

입력
1999.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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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이었을까』「이성(理性)」이 「격정(激情)」에 밀려 역사의 중심무대에서 쫓겨난 아르헨티나를 떠올릴 때마다 품게 되는 궁금증이다.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는 분명하다. 이성을 뿌리치고 격정에 자신을 맡긴 아르헨티나는 승자없는 소모적 갈등으로 반세기를 보냈다.

노조는 「민중」과 「민족」의 깃발을 치켜든 페론을 좇아 투쟁하다 삶의 터전인 경제를 스스로 파괴시켰고 자본은 군부를 방패막이로 삼아 기득권을 고수하다 더 큰 사회적 저항에 처하고 침체의 덫에 걸려들었다. 저마다 정확한 상황판단과 치밀한 손익계산없이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투쟁을 벌이다 다같이 파국으로 치달은 것이었다.

그냥 남의 일로 지나칠 일이 아니다. 한국은 환란의 긴 터널 끝에서 힘겨운 마지막 대개혁을 남겨두고 있다. 지금까지 「버티기 작전」으로 구조조정의 폭풍을 피해온 5대 재벌과 공공부문이 고통의 자기 몫을 분담할 차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소시민은 불안하다. 그 마지막 대개혁을 놓고 노동계 일각에 확산되는 투쟁론 때문이다.

민노총은 아예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상태에서 구조조정을 중단시키려 한다. 지하철 노조를 선두로 「5월 총파업」에 나서는가 하면 노학빈(勞學貧) 연대의 틀까지 짜 정부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그러나 그 투쟁론은 민노총 자신에게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미 수백만명이 실직과 감봉의 고통을 치른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반감을 살 뿐이다. 남이 자기 희생을 통해 일구어낸 경기회복의 과실을 아무런 고통분담 없이 누리려는 「무임승차」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학빈 연대의 전략이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시켜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민노총이 개발한 투쟁전략이 가지는 논리적 모순과 한계를 더 극명하게 보여줄 뿐이다.

「노」는 일자리를 가진 강자이다. 반면에 「학」은 구직자이고 「빈」은 이미 거리로 쫓겨난 실직자이다. 그러한 학과 빈을 연대전선에 끌어 들이려는 전략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강자가 구조조정을 거부하면 지나간 잔인한 무인년에서처럼 5대 재벌과 공공부문이 은행 금고를 독식하고 부족한 시중자금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보다 부질없는 부실회사 살리기에 낭비되고 만다. 학과 빈의 몫인 내일의 일자리가 그에 비례하여 축소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민노총은 노학빈 연대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투쟁전략이 가지는 문제의 핵심은 역시 실리이다. 세계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을 중단할 수 없다. 그러나 민노총은 벼랑 끝에 선 정부의 처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구조조정을 중단시키기 위한 무리수를 두면서 진퇴양난에 빠져들고 있다.

민노총이 「지금」「여기서」 패배하면 지휘부를 좇아 투쟁해온 노조원이 술렁거릴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기를 꺾어 구조조정을 잠시나마 중단시키면 더 큰 패배가 기다린다. 경제가 거덜나고 정부권위가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강렬한 반동의 힘이 노조를 억누를 것이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건강한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면 강한 노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민노총은 강한 노조가 되기를 포기하고 있다. 심지어 민노총이 주어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면밀히 살피면서 전략적으로 수를 두고 있는지 조차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소시민이 불안해 하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고 논리적 판단능력이 딸리는 노조로는 환란의 터널을 빠져 나갈 수 없다. 오히려 국가경제가 아르헨티나식 격정의 정치에 밀리고 치이면서 다시 어두운 터널 안으로 빨려 들어갈 위험성이 크다.

민노총은 강해져야 한다. 더 이상 격정에 밀려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투쟁을 벌이지 말고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는 자세로 현실적 대안을 내놓으면서 진정한 명분과 확실한 실리를 챙겨야 한다.

김병국·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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