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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조선 '궁궐목수' 유일한 계승자 신응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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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조선 '궁궐목수' 유일한 계승자 신응수씨

입력
1999.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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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이면 경복궁 동궁(東宮)이 단청작업을 하는 것으로 완전 복원돼 91년 6월부터 시작된 경복궁 복원작업이 중간 마무리된다. 조선왕조의 정궁(正宮) 경복궁은 2007년 완전 복원될 예정이지만 왕세자 처소인 동궁의 완공으로 왕과 왕비의 처소인 강녕전(康寧殿)·교태전(交泰殿), 근정전행각(勤政殿行閣) 등 왕실의 거처가 모두 제모습을 되찾게 됐다.복원사업의 목수일 총책인 도편수는 신응수(申鷹秀·58·중요무형문화재 74호 인간문화재)씨. 그는 『내달말 동궁복원이 끝나 한시름 놓게 됐다』며 『일제가 우리 역사말살을 위해 허물었던 경복궁복원에 참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원작업에 쓸 좋은 나무를 고르고 다듬기 위해 서울집을 떠나 91년 강원 강릉에 제재소(우림목재)를 열고 그곳에서 살고 있다.

의사의 담석증 수술권유도 뿌리치고 진통제를 먹으면서 그는 지금도 1주일에 2∼3일 태백산 줄기 곳곳을 누비면서 나무고르기(選木)에 열중한다. 최상품의 나무는 성장이 멈춰 재질이 단단하고 빛깔이 고운 11∼2월초의 태백산 적송(赤松)과 춘양목(春陽木). 경복궁 동궁과 97년부터 시작된 흥례문(興禮門) 복원작업에 쓰이는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 처마 등 주요 구조마다 나이테와 굵기가 다른 나무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서까래조차 쉽게 구하기 어렵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는 조선조 「궁궐목수」의 유일한 후계자이며 한국최고의 목수이다. 흥선대원군때 경복궁 중건을 맡았던 도편수 최원식(崔元植)의 수제자 조원재(趙元載)·이광규(李光奎)의 적통을 잇고 있다.

충북 청원군 빈농집안의 2남3녀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가 목수일을 하게 된 것은 16살때. 57년 병천중학교를 졸업한 뒤 목수였던 사촌형(신강수)에 이끌려 무조건 상경하면서다. 그는 사촌형의 권유로 당대 최고 실력자인 이광규씨를 만나 63년에는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을 해체,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70년 부편수로서 불국사 복원작업에 참여, 이름을 얻어 75년에는 도편수로 창덕궁 연경단 보수공사를 맡았다. 도편수가 됐다는 흥분과 긴장 때문에 그 때 잠도 제대로 못자서 몸무게가 10㎏이나 빠졌다.

그는 수원성복원(75년) 창경궁중건(85년) 경복궁 만춘전복원(88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을 했다.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이 방문했던 안동 하회마을의 전통가옥 여러 채도 그의 손을 거쳤다. 삼청동 총리공관과 청와대 상춘재와 대통령 관저도 그의 작품. 요즘 단양 구인사 조사전과 영주 현정사 법당 등 사찰건축을 하고 있는 그는 올해 초 「한국문화재 관리기능인협회」회장 감투도 맡았다.

30년 넘게 대패질과 자귀질을 하면서 입은 상처로 그의 양손은 두꺼비등을 연상케 할 정도로 얽었지만 목수일에 더 없는 보람을 느낀다. 이런 그의 소망은 10년 넘게 그를 따르는 수제자 문기현(文基賢·무형문화재 조교)씨 등이 자신을 뛰어넘는 목수가 되는 것이다.

강릉=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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