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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부적정치와 밀레니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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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부적정치와 밀레니엄

입력
1999.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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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말뚝과 식칼이 춤추더니 급기야는 부적이다. 6·4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5월 한나라당 현판에서 나왔다는 부적은 우리정치의 현주소가 주술동네의 이웃 번지임을 보여준다. 일을 저지른 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짐작키 어렵지 않거니와, 무속의 힘을 빌려 상대방을 해하려는 발상자체가 한심하고 미개하다.한나라당은 또 어땠는가. 현판 뒤에서 「한나라당은 망한다」는 붉은 글씨의 부적과 10원짜리 동전 3개, 명함 크기의 흰 천에 꽂힌 바늘 3개를 발견한 당 관계자들은 행여 밖에 알려질 세라 역술인들의 충고를 좇아 서둘러 부적과 흰 천은 태우고 동전과 바늘은 방위를 따져 인근 화장실에 버렸다고 한다. 「주술에는 주술로」였다.

심지어 한나라당 당직자들 중에는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조상묘에 박혔던 쇠말뚝을 뽑고 난 뒤부터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린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농처럼 얘기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정말 그렇게 믿거나, 믿고 싶어하는 표정들이다. 이제 좋은 일만 생기리란 바람은 그렇다쳐도 『쇠말뚝과 부적이 아니었으면 정권 뺏기는 일도 없었을 것』 『DJ도 묘를 잘 써 대통령이 된 것』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응대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이쯤되면 「범인」들은 음습한 그늘에서 「저주」의 효험을 두고두고 기꺼워할 터다.

세계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향해 호호탕탕 흘러가고 있는데, 정치권은 어두운 무속시대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세기말은 확실히 세기말이다. 하지만 도대체 몇세기 말인지 헷갈리는 세기말 현상들이 정치권에서는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홍희곤 정치부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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