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영화의 현주소 -기발한 테크닉주의. 형식은 할리우드, 내용은 독일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지나치게 한정된 시야, 소재빈곤. 「침묵의 방」의 다니 레비 감독은 『기술은 돋보이나 주제를 드러내는 힘이 부족하다』고 했다. 동독출신 배우는 『삶을 너무 좁게 표현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빔 벤더스와 「파니 핑크」의 여성감독 도리스 되리를 빼면 독일 표현주의, 뉴저먼 시네마의 독창성과 매력도 상실했다. 지금 독일영화의 현실이다.
톰 티크베어 감독의 「롤라 런」(Rola Run·24일 개봉). 역시 별나다. 외양은 온갖 기법을 뒤섞은 잡종이다. 비디오와 애니메이션과 스틸사진에 점프컷과 들고찍기. 시간과 공간에 따른 화면분할도 있다. 그러나 속은 너무나 단순하고 건조하다.
지하철에 보스의 돈 10만 마르크(약 7,000만원)를 두고 내린 갱단 하수인 마니(모리츠 블라이프트로이). 애인인 롤라(프랑카 포텐테)가 제한된 시간(20분)안에 돈을 구해 달려가기를 세 번 반복한다.
미세한 시간차이에 따라 두 사람과 주변인물들의 운명이 바뀐다. 한번은 롤라가 죽고, 한번은 마니가 죽고, 마지막은 둘 다 살아남는다. 동전을 넣고 반복하는 전자게임같다.
처음 비극에서 해피엔딩으로 갈수록 현실성은 더욱 멀어진다. 피아니스트이자 대중음악 작곡가 출신의 감독(톰 티크베어)은 동일한 리듬의 테크노음악을 심장박동처럼 반복해 롤라의 질주를 쉴새없이 부추긴다.
「롤라 런」은 감독의 「음악+ 이미지= 영화」란 말답게 뮤직비디오인지 영화인지 경계조차가 불분명하다. 세기말을 사는 젊은이의 불안과 반항, 사랑의 힘이 주제라고 하지만 정작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 그저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악을 써대고, 거침없이 슈퍼마켓에 들어가 강도질을 하고, 아버지에게 총을 들이댄다.
비디오로 출시된 독일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는 말기 암에 걸린 두 청년이 100만달러를 훔치고 살인을 하면서 바다로 향하고 「밴디트」는 여죄수들이 강한 록음악을 타고 「델마와 루이스」처럼 행동한다. 「롤라 런」의 요란한 형식도 사실은 벤치마킹에 불과하다.
반항의 기재로서 애니메이션의 사용은 프랑스 영화 「도베르만」, 시간을 돌려 반복하는 상황은 할리우드의 「리트로 액티브」나 영국의 「레인 인 슈즈」의 모방이다.
그 모방의 틀 속에서 독일영화는 한곳으로 내달린다. 반항_파괴_폭력_질주_죽음. 모두 그 획일성으로 새로운 길을 뚫겠다고 생각한다. 「나치즘」에 대한 향수도 보인다.
「롤라 런」의 드럼소리가 그것을 선동하는 듯하다. 그래서 독일영화는 다른 민족에게 즐거움을 주기에 부적합하다는 소리를 듣는지 모른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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