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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데뷔 20년] "세월만큼의 노래 부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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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데뷔 20년] "세월만큼의 노래 부르고 싶어"

입력
1999.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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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운명올해 심수봉(沈守峰·44·본명 심민경)은 가수로 정식 데뷔한 지 20년을 맞았다. 그 말은 「그 때 그 대통령」이 세상을 뜬 지 20년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이의 운명이 뜻하지 않게 뒤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치 영화처럼. 심수봉의 가수로서의 인생도 그렇게 시작됐다.

흰색 그랜드 피아노에 앉은 「그 때 그 사람」. 78년 여름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긴 머리의 심수봉(당시 명지대 1년). 당시 이 노래는 입상에 그쳤지만 다음 해 2월 음반으로 발매됐다. 트로트 같은 멜로디, 멜로드라마 같은 가사, 야리야리한 싱어송 라이터 여대생 가수.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진짜 붐이 일었다. 그렇게 해서 그해 10월 26일 궁정동 만찬장에까지 가게 됐다. 80년 9월~83년 12월 방송출연을 금지 당했다. 악몽같았던 시간.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시련을 주고 간 첫 대통령이었다.

85년 발표한 「무궁화」도 마찬가지. 『세상이 암울했어요. 우연히 무궁화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꽃송이 하나가 지고 나면 다음 꽃이 피어 사철 내내 핀다더군요. 권력도 무상했고, 개인적으로 첫 남편과의 결혼도 비극적이었어요.

그저 아이에게 유언을 남기는 심정으로 만들었지요』 「의지다 하면 된다 내 아이를 부탁하노라」 이렇게 끝을 맺는 노래는 또 방송금지가 됐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다. 박대령을 생각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그의 가수 생활은 한국 정치사에 의해 이렇게 굴곡됐다.

◆달라진 심수봉

『20년이라고 하지만 가수로서 너무 한 일이 없어요. 그일(10·26)이 있고 나서 방송사에서도 안 받아주고, 활동할 길이 없었죠. 20주년요? 이제 다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그는 진짜 달라졌다. 『신문사에 제 발로 찾아와서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가수 생활 20년만에 처음』이라는 말이 공연하게 들리지 않는다. 93년 재혼한 김호경(MBC PD)씨와의 행복한 생활은 그녀를 변하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이 옆에 누워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이런 행복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녀가 가장 좋아한다는 「비나리」는 여자로서 처음 느낀 아늑한 행복을 노래한 곡이다.

◆복제가 불가능한 목소리와 창법

그녀가 달라졌다지만 사람들은 노래방에서 여전히 청승스럽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애잔하게 「그 때 그 사람」을 불러제낀다. 그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대중의 마음은 한결같다.

『가수로서 심수봉의 마력은 도저히 복제가 불가능한 음색과, 선율을 장악하는 뛰어난 호흡으로 생각된다』 평론가 임진모씨의 분석이다.

그녀의 목소리와 창법은 때론 베갯밑에서 속삭이는 교태스런 여성의 맛이고, 때론 몇 년 묵은 멸치젓처럼 콤콤하고 찐득하다. 간지러운 듯 시원하고, 미더운 듯 배반적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어요. 패티김 이미자 정훈희 선배들의 노래를 많이 불렀지요』 대학시절 클럽에서의 아르바이트 생활은 대학가요제에 그렇게 「퇴폐적」인 분위기의 노래를 갖고 나오는 데 주저함이 없게 했다.

◆그에게 대중가요란?

『대중가요를 좋아했어요』 그녀가 말하는 「대중가요」란 뽕짝의 기운이 있는 곡들이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가 사랑받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대중가요란 우선 공감대가 있어야지요. 일단 가사가 내 노래 같다 하는 식이죠. 또 하나는 한과 흥이죠. 리드미컬한 반주에 실리는 단조의 노래, 대중은 그것을 가장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삼바, 탱고, 재즈도 좋다. 앞으로는 이런 노래들도 부를 생각이라고 한다.

◆20주년 행사는

최근 8집 「아 나그네」를 발표했고, 5월 1, 2일 쉐라톤워커힐 제이드가든에서의 콘서트를 시작으로 6개 도시에서 16회 순회공연을 갖는다. 이렇게 멀고 긴 여정의 콘서트는 처음이다.

8월에는 다시 자작곡 중심의 음반을 낸다. 그는 나이 만큼의 폭을 가진 노래를 부르고 싶다. 『아, 심수봉이네』 이런 노래를 멈추고 싶지 않은 게 그녀의 꿈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그때 그사람」 「젊은 태양」 「당신은 누구시길래」(79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84년), 「무궁화」(85년), 「사랑밖엔 난 몰라」(86년), 「미워요」(87년), 「비나리」(94년), 「백만송이 장미」(97년), 「 아, 나그네」(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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