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제조업의 종말은 다가오는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제조업의 종말은 다가오는가

입력
1999.04.22 00:00
0 0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70년대 중반 이후 구미 선진제국은 주요 산업의 잇달은 몰락을 경험했다. 다수의 논자들은 이 같은 탈산업화(deindustrialisation)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지만, 일부 논자들은 이것이 경제선진화에 따른 불가피하고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소득이 향상하여 어느 점에 이르게 되면 제조업 제품에 대한 수요는 성장을 그치고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제조업의 중요성이 점차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제조업의 종말」의 명제는 90년대에 들어 첨단지식에 기초한 서비스산업이 상대적으로 확장하면서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고, 최근 들어서는 한국에서도 전망없는 제조업을 빨리 버리고 서비스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견해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진제국에서 이미 지난 20여년간의 논쟁을 통해 드러난 「제조업 종말론」의 여러 가지 약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첫째로, 탈산업사회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제조업제품에 대한 실제수요는 고소득사회가 되어도 감소하지 않는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보몰(Baumol)교수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로손(Rowthorn)교수 등의 지적에 의하면, 흔히 이러한 착각들을 하는 것은 제조업 생산성이 서비스업 생산성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관계로 제조업제품의 상대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이지, 제조업제품의 실제 소비량이 줄어들기 때문은 아니다.

둘째, 최근 선진국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이 늘어난 데에는 기업 재조직에 의한 통계적 환상도 한 몫을 하였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많은 제조업체들이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던 사내 서비스들을 (예컨대 판매, 경영컨설팅, 종업원 복지제공 등) 독립업체로 분리시키거나 외부업체에 발주하면서 종전에 통계상으로 제조업의 일부로 구분되던 경제활동들이 서비스업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셋째, 서비스업은 국제교역이 어려운 제품의 성질상 국제수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80년대 제조업의 몰락을 방치한 영국이 금융업 등 서비스산업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국제수지난을 겪으면서 지속적인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 증거이다.

최근 영국 블레어총리가 유럽연합 회의에서 영국경제의 「탈산업화 성공사례」를 자랑하다가 다른 회원국 정치인들로부터 유럽 평균소득도 채 못되는 나라에서 더 잘 사는 나라에 주제 넘는 훈계를 한다고 핀잔을 들은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넷째, 「제조업 종말론」의 비판자들은, 많은 수의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 직접 최종 소비자를 상대하기 보다는 제조업체에 생산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금융업, 경영 및 기술컨설팅, 첨단소프트웨어 제공 등이 그 좋은 예이다. 든든한 제조업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탈산업화가 일어나면 서비스부문이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저임금, 저부가가치 활동(소위 「맥도날드」일자리) 뿐이다.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되면서 제조업의 상대적인 생산성 향상에 따라 서비스 부문의 고용이 증가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며,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공장」보다는 「사무실」이나 「점포」에서 일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탈산업화」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최근 들어 첨단지식을 기초로 한 서비스업의 중요성과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제조업의 중요성이 줄어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관광업이나 은행업 등 서비스업에 의존하여 세계 최고의 소득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스위스가 사실은 기계, 화학, 제약 등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의 3배에 가까운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을 자랑하는 제조업 강국이라는 사실은 건실한 제조업기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