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에는 가장 고독하고, 그리고 후대에는 가장 오랫동안 무덤에서 불려나올 작가」.한국문학에서 둘이 없는, 자신만의 형이상학적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 박상륭(57)씨. 아직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이름조차 잘 알려져있지 않은 그의 소설세계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예술의전당은 23·24일 「박상륭 문학제」를 연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이에 맞춰 29년만에 박씨의 세번째 단편소설집 「평심」과 산문집 「산해기」를 출간했다.
몇몇 그의 문학 애호가들 사이에서 박씨는 「칠조」로 불린다. 선종의 6조 혜능을 잇는 선가적 인물이라는 의미다. 또 그의 글은 소설이 아닌 「해독되지 않는 경전」이자, 「잡설」로도 불린다. 소설의 세계를 뛰어넘어 거대한 사유의 궤적을 날 것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박상륭 문학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박상륭 문학제」는 춤과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 날인 23일 오후 7시에는 「박상륭 문학의 근대와 탈근대」를 주제로 문학평론가 김인환 김정란 진형준, 소설가 이문구씨가 참여하는 심포지엄에 이어 무용 「시인의 죽음 99」(안무 박호빈)가 공연된다. 무용은 박씨가 67년 발표한 단편 「시인 일가네 겨울」을 춤으로 표현한 것으로 자아의 분열·구도적(求道的) 살인이라는 줄거리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24일 오후 3시에는 「박상륭 소설의 시간의식」을 주제로 평론가 권택영 김명신 성민엽씨, 시인 김사인씨가 참여하는 심포지엄과 영화 「유리」(감독 양윤호) 상연, 마임극 「두 문 사이」(연출 임도완) 공연이 이어진다. 「유리」는 박씨의 장편 「죽음의 한 연구」를 원작으로 한 96년작으로 그 해 칸영화제 초청작이자 파격적 내용과 영상으로 공륜심의가 문제되기도 했던 영화. 「유리」는 박씨 문학의 핵심적 장(場)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구도와 정신의 공간이다. 여기에서 생명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33살의 수도승 「유리」가 『마른 늪에서 펄펄 뛰는 물고기를 낚으라』는 화두를 붙들고 40일간 밀교적 고행을 벌이는 내용이다. 유리의 스승 살해는 순간적 깨달음의 실현이고, 「누이」 와 벌이는 정사는 음양의 조화를 꿈꾸는 행위로 해석된다. 마임극 「두 문 사이」도 연출자 임도완씨가 「죽음의 한 연구」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두 문」 사이에 있는 존재의 선택을 표현하고 있다.
세번째 단편소설집
8편의 작품이 실린 단편집 「평심」은 박씨가 94년 이후 발표한 작품들을 모은 것. 표제작은 『마음을 넓히면, 그 한 마음이 우주 자체이다』는 명제를 한 젊은 왕자의 구도행을 통해 추적하면서 박상륭식 사유의 핵심인 「마음의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그의 캐나다 이민생활 체험이 들어있는 단편들도 포함됐다.
박상륭 문학의 키워드
우주와 유토피아, 말씀 등은 박상륭 문학의 이해를 위한 키워드들이다. 그의 모든 글은 우주와 인간존재 본연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의 자취다. 그 탐구에는 신화와 현실, 밀교와 탄트라, 선과 무속(巫俗), 연금술과 신비주의가 거침없이 공존한다. 더구나 박씨가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마저 따라읽기 힘들 정도로 미로처럼 얽혀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박상륭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라며 독자들은 물론 문학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이유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박씨의 소설은 우리 현대문학의 신비로운 성과로 끊임없이 그 의미가 개척되어야 할 황무지로 평가된다.
『이 우주는 마음의 우주, 말씀의 우주, 몸의 우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과 짐승의 아름다움을 말한 희랍신화의 우주가 몸의 우주라면, 예수가 등장하면서 말씀의 우주가 나왔다. 그러나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은 마음의 우주라는 것이 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이자 해답이다』고 박씨는 이민갔던 캐나다에서 지난해 영구귀국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었다.
주요 작품
63년 「피밭」이라는 의미의 「아겔다마」가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선하면서 등단한 박씨는 69년 캐나다로 이민갔으며 이후 단편집 「열명길」(70년), 장편 「죽음의 한 연구」(75년)가 나왔고 모국을 떠나있으면서 74년부터 20년간 장편 「칠조어론」을 완성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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