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숙(37) 시인이 두번째 시집 「나만의 것」(민음사 발행)을 냈다. 발랄한 젊은 기운이 생선비늘처럼 싱싱하던 첫번째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에 비해 5년만에 묶은 그의 새 언어들은 한층 가라앉아 있다. 내가 마음 속에 그리는 당신과도, 내가 생의 자취를 남기며 살아가야 하는 서울이라는 공간과도 쉽사리 화해하지 못하고 속울음을 삼켜야 하는 「그녀」들. 그의 두번째 시집에는 직장을 가지고, 아이들도 한둘 키우며 살아가는 이즈음 세상 모든 「그녀」의 울음자국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 자국들을 애써 지우며 시인은 자신만의 것을 찾아나선다.그가 출근길에 보는 세상은 「속물의 대로(大路)」이고, 생은 「시간의 폭주(暴走)」일뿐이다. 「사람들이 풍선처럼 떠다니는 아침/가라앉은 몸을 부풀리려고/나, 속물의 대로를 나선다/절망도 부드러운 가지 휘어지듯/꺾이지 않을 정도로만 빨아먹은 몸/나, 새벽의 도둑처럼 빌딩에 스며든다/…/돌아보면 익숙한 세속의 몸짓이/진짜보다 더 그럴듯한데」(「도시의 손바닥」부분).
「보조키를 마련하고, 보험을 들어두고/일회용 콘택트 렌즈를 사두고/여벌의 스타킹을 가방에 넣고서/생수통이 실린 차들 몰아/강남대로를 달린다, 세월아/…/먹고 마시고 웃고 우는 내가/시간을 덜어내려는 삽질을/한사코 멈추지 못하네, 짧은 손힘으로는/희망만큼만 겨우 남겨놓겠네/이럴 때 생은 장중한 시간의 폭주」(「질주냐 과속이냐」부분).
남의 건물 지하주차장에 방을 얻어살며 막 얻은 아이에게 해바라기를 시키는 신혼의 여인, 집 떠나 서울로 대학 올 때 어머니가 비상용으로 끼어준 금반지가 이제는 굵어진 손가락 마디 때문에 뺄 수조차 없는 여인, 전철 파업이 시작된 날 출근길 버스에서 호떡을 들고 올라탄 노숙자를 보며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는 여인. 정씨의 시들은 미로를 헤매듯 살아가는 이 시대 여인들의 자화상이자 고백록처럼 읽힌다. 그러나 희망은 잃을 수는 없다. 「그녀」들은 허공에라도 희망의 집을 지어본다. 「허공에 집을 지어본다/푸른 지붕, 은 너무 상투적인가요/그러면 지붕을 없애면 어떨까요/조금 세찬 바람이 불면 어떻습니까/다정한 사람끼리 꼭 껴안아보지요/…/방은 오로지 하나만 만듭니다/부엌은 넓게 비워두구요/하늘이 낮게 내려와 얼굴을 간지럽힙니다/다정한 사람들은 어디서나 둘러앉지요/」(「허공」부분).
세상은 「어디서나 둘러앉는」그런 희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 만드느라 영일이 없는 출판사의 주간이기도 한 정씨는 『언어의 치열성에 이르기에 너무 부족함이 많은 시들을 묶어놓고 보기 부끄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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