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소설가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 다짐을 했다. 눈물을 보이지 말 것, 목청을 높이지 말 것, 정답을 만들려고 하지 말 것. 일부러 그런 다짐을 해야 할 만큼 내 속에는 표출하고 싶은 눈물과 하소연, 성급한 도덕주의가 많기 때문이었다.
젊은 날의 나는 나의 다감함이 거추장스러웠다. 사소한 일에도 자주 상처를 받았으며, 또한 그것을 숨기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자기혐오에 빠지곤 했다. 그런 내가 정지용의 시구 중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마음만은 가벼워」라는 구절에 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쿨(cool)」의 발견이라고나 할까.
학사논문과 석사논문에 나는 모두 정지용론을 썼다. 『시가 솔선하여 울어버리면 듣는 사람은 서서히 눈물을 만들어낼 여유를 갖지 못한다』, 『남을 감동시키려면 먼저 자기의 감격을 신중히 이동시켜야 한다』 같은 문학관을 그는 한 구절로 정리했다. 「안으로 열하고 겉으로 서늘옵기」. 한동안 그 말은 문학과 삶을 대하는 나의 눅눅한 누선을 긴장시켜 주었다.
모든 예술에는 열과 서늘함이 다 필요하다. 열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러나 서늘함 즉, 표현의 계산과 절제가 없다면 아무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 두 가지야말로 예술의 내용과 형식인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삶은 소설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다. 삶에서는 서늘하기가 간단치 않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쿨한 사람이 부럽기는 해도, 열한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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