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서동권(徐東權) 당시 안기부장이 극비리에 방북, 김일성(金日成) 김정일(金正日)부자와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논의했으며, 북한도 92년 윤기복(尹基福)노동당 중앙위원을 서울로 보내 정상회담을 타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20일 발매되는 월간조선 5월호는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이 구두로 6공 비사를 밝힌 「노태우 전대통령 육성회고록」을 통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 회고록에 따르면 90년 10월 1일 서동권 전부장은 노전대통령과 김주석의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평양 주석궁에서 김부자와 면담했다. 이어 북한도 92년 봄 윤기복을 밀사로 보내 김일성 80회 생일인 92년 4월 15일 노전대통령이 방북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노전대통령은 「생일초대」라는 점을 들어 거부했다.
노전대통령은 『우리는 김일성이 남한정세를 오판하지 않도록 하는 차원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했다』며 『김일성은 정상회담 원칙에는 동의했으나 생일에 맞추어 방북하도록 초청해 찬물을 끼얹었다』고 회고했다.
서전안기부장과 윤기복의 교환 방문은 국내외 학계에서 비공식적으로 언급돼 왔으나 노전대통령의 이번 언급으로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노전대통령은 80년 김대중(金大中) 내란음모사건과 관련, 『나는 김대중씨가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의 정적이지 우리의 정적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그의 구명을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과 군부 핵심인사들에게 건의했다』고 밝혔다.
노전대통령은 이밖에 북방정책, 소련 및 중국과의 수교, 정부의 비핵화선언 등의 과정에서 발생했던 6공 비사와 김영삼(金泳三)정부의 대북정책 평가 등을 소상히 언급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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