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을 방문한 정치지도자들이 그 나라의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은 의례적 행사다. 그러나 침략과 적대의 불행한 역사를 공유한 이웃나라 국민의 원한을 씻고 진정한 화해를 가져온 사례도 있다. 주인공은 브란트 전 서독총리. 70년 12월, 2차대전 패전후 강요된 국경선을 추인하는 등 전후청산을 위한 조약을 맺기위해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무명용사 묘지를 찾았을 때였다. 브란트는 나치 희생자 추모비에 조화를 놓은 뒤 갑자기 무릎을 꺾고 주저앉은 채 눈을 감았다.■브란트의 돌출행동에 당황해 하던 수행원들의 눈에도 이내 눈물이 고였다. 이 감동적 장면에 폴란드인들은 다만 숙연한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다음날 폴란드총리는 브란트와 작별하면서 『아내가 어젯밤 친구들과 당신얘기를 하면서 오랫동안 울었다』고 귀띔했다. 나치 침략으로 모진 고통을 겪은 폴란드인들에게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브란트는 후일 회고록에서 『독일이 저지른 죄과앞에 달리 사죄할 말이 없어 무릎꿇었다』고 밝혔다.
■「바르샤바의 무릎꿇기」로 역사에 기록된 브란트의 사죄는 통일의 길을 열기위해 동구권과 화해를 추구한 그의 동방정책을 동구인들이 심정적으로 수용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역사는 평가한다. 동구인들은 특히 나치 죄악에 책임이 없는 브란트가 사죄할 뜻이나 용기가 없는 독일인들을 대신해 무릎을 꿇은데 마음이 움직였다. 브란트는 청년시절 히틀러가 집권하자 노르웨이를 거쳐 스웨덴으로 망명, 반나치 지하투쟁에 몸을 던진 인물이다.
■16일 방한한 오자와 이치로(小澤 一郞)일본 자유당당수가 18일 효창공원의 백범 김구선생과 윤봉길·이봉창 의사묘소 등에 참배한다. 항일선열의 묘소를 일본 정치지도자가 찾는 것은 처음이다. 오자와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외치는 대표적 극우파로, 과거사 사죄문제에 『노상 엎드려 사죄할 필요가 있나』라고 극언한 적도 있다. 이런 인물이 백범과 의사들의 묘소에서 진정 사죄하는 모습을 보일지, 백범과 의사들이 노하시지나 않을지, 지켜볼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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