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헌정사처럼 우리 대통령들의 퇴임후 삶도 대체로 평온하지 못했다.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은 60년 4·19혁명으로 하야했으나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5월9일 정계은퇴 성명을 발표한 뒤 같은 달 29일 새벽 하와이 망명길에 올랐다. 이대통령은 말년에 고국에 돌아오고 싶어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65년 호놀룰루 요양원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5·16이후 정쟁법(政爭法)에 반대, 62년 3월 대통령직을 사임한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은 63년과 6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했다. 72년 유신 이후에는 반독재투쟁에 앞장서 민청학련 배후지원 혐의(74년)와 YWCA 위장결혼식 사건(79년)으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80년 「서울의 봄」이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문화활동에 전념하다 90년 7월18일 타계했다.
79년 10·26사태로 권좌를 승계한 최규하(崔圭夏)대통령은 이듬해 6월 『81년 상반기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공언한 뒤 2개월여만에 돌연 하야, 신군부 집권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이후 96년 11월 5·18사건 결심공판에 강제구인될 때를 제외하고는 각종 국회특위 출석과 검찰조사 등을 거부하며 지금껏 은둔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93년 2월24일 물러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퇴임 후 3년이 채 안된 95년 12월3일 부정축재로 법의 심판을 받은 첫 전직대통령이라는 오명과 함께 구속수감됐다. 징역 17년을 선고받았으나 97년 12월22일 특별사면된 뒤에는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다. 2,638억원의 추징금 가운데 아직도 880여억원을 미납한 상태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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