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남편이 느닷없이 머리를 묶어달라며 고무줄을 들이댔다. 묶어달라기에 묶긴 했지만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 아직 덜 자란 머리가 삐져 나왔고 뒤통수가 납작한 게 더 눈에 띄었다. 그래서 『별로 안 어울리는데…』했는데도 남편은 시원하다며 그러고 다녔다.40대인 남편의 머리는 항상 눈에 띄었다. 그 때문에 동네 사람들도 「아, 그 사람」하고 누구나 쉽게 기억을 했다. 시누이 친구들은 길고 곱슬한 머리를 보고 베토벤이라 했었고 처음 만난 내 동창들도 「미스터 뿌수수」라고 불렀었다. 늘 남다른 머리를 한 그에게 「그건 그의 개성」이었지만 꽁지머리는 아무래도 눈에 많이 설었다. 그러나 내 눈이 기준도 아니고 내가 그의 자유를 막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꼬장꼬장하신 시아버지도 다른 면에서는 지극히 규범적인 아들의 이런 모습을 아무 말씀 없이 받아들이셨다. 거꾸로 꽁지머리를 처음 본 건축가 동료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었으며 걔중에는 나란히 서서 걷는 것조차 꺼려 도망가는 친구도 있었다.
언제까지나 묶고 다닐 것만 같던 남편은 사나흘 후 이제부터 풀고 다니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별로 멋없었어요』했더니 『그럼, 왜 안 말렸소?』라고 물었다. 『당신이 묶어달라기에. 정초에 주변 사람 실컷 웃겼으니 이보다 좋은 설 선물이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당신 머리 당신 마음대로 하는거지』
군인같은 빡빡머리 남학생보단 낫지만 머리카락이 조금이라도 내려오면 답답해하면서도 귀밑 3㎝를 지켜야 하는 숱많은 단발머리 딸이 눈에 들어왔다. 문제를 일으킬까 걱정되어 단정하라고 멋부리지 말라고 단발머리 규정을 만들었다지만 사실은 통솔하기 쉬우라고 그러는게 아닐까. 집에 오면 머리부터 묶고 책을 읽는 딸을 보면서 꼭 지켜야 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원점에 서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개성이 가장 중시되는 세계, 무한 경쟁시대에서 우린 어떤 수준일까.
서형숙·한살림 부회장·서울 서초구 잠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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