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교포이자 국제적인 평화운동가인 이기항(李基恒·이준 아카데미원장)씨가 「헤이그의 봄소식」을 들고 서울에 왔다(15일자 한국일보 17면 인터뷰). 그는 지난 95년 헤이그에 「이준(李儁)열사 기념관(Yi Jun Peace Museum)」을 세워 개관하는데 주도적으로 일한 사람이다. 당시 한국일보는 이 사업을 전경련과 공동주관으로 도왔었다.이씨가 전해온 봄소식은 「헤이그 평화대회_The Hague Appeal for Peace 1999」에 관한 것이다. 제1차 만국평화회의가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로, 오는 5월에 전세계에서 5,000여명의 평화학자 평화운동가들이 모여 새로운 개념의 「평화문화」를 토론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덧붙여서 대회기간중인 5월15일엔 「한민족평화제전」이 한국의 평화를 주제로 개최될 예정이다.
눈에 띄는 것은 헤이그 평화대회의 두가지 주제다. 하나는 「전쟁 없애기」, 다른 하나는 「평화 인권론」인데 특히 평화가 인간의 기본권의 하나임을 강조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100년 전에 헤이그에서 열린 제1차 만국평화회의는 「국가간의 분쟁의 조정 또는 예방은 전쟁이 아닌 중재의 수단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평화해결원칙을 제시함으로써 현대 평화운동의 이정표가 된 이벤트로 평가된다. 이준 열사의 순국을 부른 1907년의 헤이그회의는 8년만에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였다.
중요한 관점은 「전쟁이 아니라 중재의 수단」으로 평화를 지켜가자고 했던 19세기 말의 논의가, 마지막 해를 앞둔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도 전혀 지켜지거나 개선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더욱 공공연하게 전쟁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100년은 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온갖 전쟁으로 얼룩진 반(反)평화의 세기였고, 특히 마지막 순간인 지금도 미국과 NATO군의 유고공격이라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첫번째 평화회의를 기념하는 100년만의 평화대회가 열리는 장소가 공격의 한쪽 당사자인 서유럽이라는 사실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이다. 공교롭지만, 전쟁을 하면서 평화를 말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있다.
문제는 지금 진행중인, 그래서 연일 난민들의 참상이 온갖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되는 전쟁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다. 미국과 NATO군은 『유고 정부가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대량학살하는 등 기본 인권을 침해했으며, 따라서 침해받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인권침해의 부도덕성이 이곳에만 있는 현상이 아닌 한 개입의 도덕적 정당성은 크지않으며, 다른 지역과 나라에서 이전에 있었던 인권침해 사례 때에는 왜 개입하지 않았는가 해명해야 한다』고 힐난한다.
도덕의 잣대를 떠나서 법률적으로 보면, 미국과 NATO군의 유고공격은 명백한 침략이고 불법행위라고 한다. 폭격 또는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고 있음은 도리어 중대한 인권침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진정한 전략적 목표가 사실은 동구권 몰락이후 존재의 근거가 약화하고 있는 NATO의 정당성을 지지할 필요성 때문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는 요즘이 부활시기이다. 부활한 예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제일 먼저 「평화」를 기원한다. 지금 만신창이로 얻어맞는 유고연방의 세르비아계는 동방교회의 그리스도교 문화권이다. 세르비아계에 뭇매를 가하는 미국과 서유럽국가들 역시 서방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그리스도교 문화권이다. 세르비아계로부터 박해받는 코소보의 알바니아계는 이슬람문화권이다. 민족간의 갈등에 종교적 충돌이 감추어져 있다면 이는 국제법이나 도덕이나 정치적 목적 이전에 더 큰 죄악이며 위험이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폭탄으로 폐허를 만들면서 「이것이 평화」라고 강변하는 힘의 논리가 아닌가 한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서 입장을 거절당한 이준열사는 「왜 한국을 제외시키는가?」라는 격렬한 항의문을 발표했었다. 「한민족 평화제전」을 준비중인 이기항 이준아카데미원장은 이번 헤이그 대회에서 왜 한국에는 평화가 없는가?」를 묻겠다고 한다.
발칸 사태에서 우리가 바로 보아야할 일이 있다. 우리 자신의 평화이다. 5년전 이른바 북핵위기 때 미국 백악관이 산정한 한반도에서의 전면전 가상 사상자 수는 100만명이었음도 기억해야 한다.
/본사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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