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가족이야기] 우애넘치는 9녀1남 딸부잣집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가족이야기] 우애넘치는 9녀1남 딸부잣집

입력
1999.04.15 00:00
0 0

살다 지쳐 기댈 언덕이 필요할 때 찾게 되는 곳, 바로 가족의 품이다. 그 기댈 언덕이 너무나 듬직해 삶에 지치는 것이 무섭잖은 가족이 있다. 아들하나에 딸 아홉. 김동업(75)이란 이름 석자 보다는 「딸부잣집」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충남 공주시 마곡사 밤나무네가 주인공이다.『꿈에 한 도사가 집 마당에 꼴망태를 던져주는 거여. 없던 살림에 웬 떡이냐 싶어 뒤집어보니 새까만 돼지가 꾸물꾸물하더라고. 세어보니 열한마리여. 그런데 한 마리는 데굴데굴 굴러가서 아궁이에 타서 죽고…, 결국 하나 먼저 보내고 열남매를 키웠지』.

돼지라서 아들일줄 알았다는 어머니 오준님(69)씨. 그러나 딸을 내리 낳을 때는 동네가 창피해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한다. 지금은 모두 출가한 딸들도 그때를 생각하면 불만이 많다. 『말도 말아요. 딸은 생일이나 돼야 미역국에 쌀밥 겨우 해 주는데, 외아들(둘째)은 아프기만 해도 하얀 쌀밥을 보글보글 끓여내주시는 거예요』. 『우리집 밥상은 둘인데 아버지와 아들은 귀족같은 밥상이었죠. 우리는 좋게 말해 뷔페식이었어요.

김치 한양푼, 나물 한양푼, 보리밥 한양푼 덜렁 올려놓고 밥상 위에서 전쟁을 벌였죠. 굼뜨면 없었거든요. 참 서럽게도 자랐어요』.

「이제사 말이지만」으로 시작되는, 평생 반복돼온 투정. 며느리에다 사위 손자손녀까지 마흔다섯이라는 대식구가 모이면 「차별」받고 자란 어린 날 추억 더듬기에 밤새는 줄 모르지만, 아쉬움은 이제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

일년내내 쉴 틈없이 바쁜 게 농촌일이지만 딸부잣집은 일손이 모자라 본 적이 없다. 농약뿌릴 때, 고추 밤 고구마 가을걷이할 때 사위하고 딸들이 돌아가며 한집씩 왔다가는데 일년이 훌쩍 지나가기 때문. 매월 첫주에는 맏딸 춘희(51)네가, 다음주엔 둘째딸 충자(45), 그 다음엔 춘교(42), 춘식(41) 춘미(38) 춘덕(36) 춘남(34) 춘태(31) 춘명(28)씨등 9자매가 차례로 내려와서 농사를 돕는다.

지난 해엔 여섯째 춘덕씨 집에 불이 나서 살림살이가 홀랑 타버렸다. 빈털터리가 된 춘덕씨 가족에게 남매들은 100만원, 200만원씩 모아서 살림을 장만해 주기도 했다. 『식구가 좀 많아요. 그러다보니 한 살림 차려지대요』. 춘덕씨의 농담 속엔 열남매의 정이 뚝뚝 묻어난다.

딸아이 이름에 대부분 남자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아들을 갈망했던 줄줄이 딸집. 이제 동네 이웃들 중엔 구겨진 마음 펴주며 정겹게 살아가는 딸부잣집을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글=허윤정(방송작가)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