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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죽은 사람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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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죽은 사람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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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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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한식(寒食)무렵이면 우리의 장묘(葬墓)문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성묘길에 나선 자동차 행렬로 전국의 도로가 몸살을 앓는 교통체증, 신문방송들이 공중촬영해서 보여주는 공동묘지 사진들은 앞으로 묘지가 국토를 얼마나 더 잠식해 갈것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조상의 묘를 단순한 유택(幽宅)으로 보지않고, 후손의 길흉화복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우리 풍토에서는 장례의 형식이나 묘지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 어려울수밖에 없다. 명당에 조상을 모셔 발복하려는 욕구, 훌륭한 산소를 효도의 상징으로 보는 인식 등이 계속 묘지를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좀처럼 변할것같지 않던 매장선호 의식이 최근 눈에 띠게 달라지고 있다.

1970년 7%에 불과하던 화장율이 꾸준히 늘어나 94년 20.5%, 96년 23%, 98년 에는 27.7%를 기록했다. 서울시의 경우 30%를 넘어섰으나, 일본 97% 태국 90%와는 비교가 안된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부모의 화장에 찬성하는 사람은 30%정도, 자기자신을 화장하겠다는 사람은 60~70%에 이른다. 부모를 화장하는 것은 어쩐지 불효를 저지르는것 같지만, 자기자신을 화장하는 것에는 절대다수가 마음을 열고 있다.

우리가 다음 단계로 정리해야 할것은 무덤을 남기느냐 남기지 않느냐는 문제다. 화장율이 높아지더라도 화장한 후 대부분 무덤에 묻힌다면 묘지는 계속 늘어나게 된다. 여러대에 걸쳐 유골함을 묻을수 있는 납골묘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묘로 보급되고 있고, 납골당이 늘어나는 것은 묘지면적의 증가를 완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왕 화장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무덤을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할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1년사이 유명인사들을 중심으로 「화장 유언남기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작년 8월 별세한 최종현 SK그룹회장이 화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긴것을 계기로 시작된 이 운동에는 구자경LG그룹명예회장, 김모임복지부장관, 고건서울시장, 이세중변호사등과 종교지도자들이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화장한 후 어떻게 할것이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화장한 유골을 땅에 묻어 무덤을 만드는 것은 이중의 일이다. 납골당에 유골을 모시는 것도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가족을 화장한 후 재로 뿌리기가 너무 섭섭해서 납골당에라도 모시려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칸마다 유골함이 들어있는 납골당 사진을 볼때마다 나는 그들이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산 사람들의 집착때문에 그들은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칸마다 갇혀 있다. 그들도 언젠가 재로 뿌려지는 절차를 밟게 될것이니 결국 이중의 작업이 된다. 매장도 그렇다. 묘지 사용기간을 30년으로 제한한다면 30년후 후손들이 또 뒷처리를 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운 일들을 왜 남겨야 하는가. 정 섭섭하다면 선조의 묘역에 유골함을 봉분없이 묻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묘는 개인의 묘가 아닌 가문의 묘로 여러대의 유골을 함께 보관하고 있다. 묘 내부의 공간이 꽉 차면 가장 윗대의 유골함을 내려 재를 묘역에 뿌리고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그러니 영구히 가족묘로 사용할수 있다. 묘지의 활용이 이처럼 높은데도 죽은 사람들이 국토를 잠식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자연장(自然葬)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화장한 재를 산이나 바다에 뿌려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네루는 인도대평원과 갠지스강에, 마리아 칼라스는 에게해에, 주은래와 등소평은 양자강에, 아인슈타인은 델라웨어강에 뿌려졌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라고 자연장 운동가들은 묻고 있다.

조상의 산소에 성묘하는 모습은 늘 보기가 좋다. 선조에 대한 공경심, 가족의 유대감, 죽음과 삶의 이해, 할아버지 할머니의 추억등이 함께 들어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죽어서까지 땅을 차지하여 후손들이 사용할 땅을 잠식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것이다. 화장하여 재를 뿌리는 것은 묘지를 살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선택이 아니다. 무덤을 사양하겠다고 유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화장 유언남기기운동」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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