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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일] 20년전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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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일] 20년전의 선택

입력
1999.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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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 00인데요』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쳐다보았다는 말은 그의 체구가 내가 오래전에 보던 어린이가 아니란 뜻이다. 그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번에 대학에 진학해서 인사차 들른 것이다. 안보던 사이에 벌써 이렇게 자랐나. 그는 요즈음 청년답지 않게 예의도 바르고 서글서글하다. 부모님은 잘 계시느냐고 인사를 했다. 잘 계시다며 서울에 올라가거든 자주 나를 찾아보라는 당부도 받았다고 했다.

20년 전의 일이다. 신혼초의 갈등을 풀기 위해 나를 찾았던 한 부부를 기억한다. 복잡한 가정환경을 가진 이 부부는 결혼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부인은 불안과 초조, 우울로 생의 의욕을 잃었다. 그 때의 절망을 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의 힘은 없었다. 심한 우울과 불안을 치료하기 위해 그녀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오래 사용했다. 1년쯤 치료했을까. 그녀는 뜻하지 않게 임신을 했고 항불안제나 항우울제가 태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그녀는 의사의 권고대로 태아를 유산해야겠다고 했다. 교과서대로 하면 너무나 당연한 권고였고 결정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치료하면서 그녀의 불안과 우울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공감하고 있었다. 약때문에 기형아가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그녀의 불안감에 충분히 공감했다. 복용하던 약의 양이 기형을 일으킬 수준은 아니지만 그 누가 알랴. 바로 그 기형아가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지를. 나는 그녀에게 아기 문제를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길 충고했다. 나도 사실 불안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신앙에 호소했다. 『그런 불행이 당신에게 닥치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어렵게 불안을 극복했고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그런 그녀의 아들이 이렇게 자라서 나에게 인사를 온 것이었다.

『어려움이 있거든 자주 들르려무나』 부모의 어려운 결정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 그에겐 이젠 그보다 더한 어려움은 아마 없을 것이란 상상과 바람을 가지면서 문을 닫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지우지 못했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대 교수·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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