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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지식국가와 사회기상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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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지식국가와 사회기상예보

입력
1999.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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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知識)국가와 신(新)지식인. 경제위기의 탈출구로 설정된 이 개념을 접할 때마다 나는 심기가 불편하다. 지식을 매만지며 살아가는 직업인의 이기심이 발동한 탓도 있겠고, 지식생산의 주도권을 익명의 대중으로 이전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담고 있는 듯하여 근거없는 저항심리가 촉발되기도 한다.컴퓨터에 밀려 타자수와 식자공이 퇴장하듯, 첨단기술과 상업적 지혜로 무장한 지식국가와 신지식인이 나같은 대학교수를 무용지물로 만들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나도 시청각장비를 강의에 동원하여 적응력을 과시해보지만, 지식국가에 걸맞는 「6백만불의 사나이」같은 이미지를 체화할 수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21세기의 국운이 정보화로 좌우된다는 점에서 정부가 지식국가 건설에 전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식국가의 초점이 기업, 국가경쟁력, 나아가서는 개별시민의 경쟁력강화에 과도하게 맞춰져 있는 것은 문제이다.

지식은 시장경쟁의 최신무기이지만, 사회통합과 복지증진을 위한 인본주의적 관리기제이기도 하다. 이 점이 정보화시대의 지식국가와 1890년대 유럽에서 등장한 1세대 지식국가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차이다.

100년 전의 지식국가는 그 사회에 축적된 모든 형태의 지식과 지혜를 종합하여 시민생활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특히 노동계급을 포함한 취약계층이 빈곤과 질병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진취적, 보편적 사회정책을 펴나가는 데에 주력하였다.

그런데 이런 지식국가를 태동시킨 전환적 계기가 생활상태에 대한 정보를 체계화한 사회통계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867년에 씌어진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는 영국의 공장감독관과 의회의원들이 조사한 노동실태 조사보고서가 자주 인용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규명하기 위해 그것을 활용하였던 반면, 영국의회는 세계최초로 개혁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 썼다.

일본의회가 일찍이 근대적 형태의 공장법을 통과시킨 것도 1904년 노동부가 발행한 「직공사정(職工事情)」이라는 노동실태조사 덕택이었다. 시민들의 생활상태에 대한 가장 정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매년 「생활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사회정책자료로 활용하는데, 시민생활의 모든 측면을 세밀하게 파악하기로 유명하다. 예를 들면, 가족의 소득규모와 수입원은 물론 지출항목, 주거환경, 안전시설, 건강상태, 크고 작은 소유물 등이 모두 망라된다.

정책당국은 시민들의 삶의 질과 사생활, 위기관리능력에도 관심을 둔다. 그래서 「당신의 방은 외부인에게 노출되는가」 또는 「위기사태시 당신은 60만원정도를 조달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도 빼놓지 않는다.

항목별로 취약계층을 가려내어 대상집단의 특성에 적합한 사회정책을 개발하기 위함이다. 지식국가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식국가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 전에 우리는 IMF사태로 악화한 소득격차와 민생고가 증폭된 불안과 위기감이 지식정보산업화로 치유될 것인가를 우선 따져보아야 한다. 나는 여기서 「지식국가」의 최우선적 과제로 「사회기상예보제」를 제안하고 싶다.

IMF위기가 얼마만큼 가셨는지, 생활고와 실업공포가 줄었는지, 인간관계의 유화성과 신뢰성은 회복되었는지, 과시적 소비는 얼마나 확산되고 있는지 등을 수시로 알리는 제도, 다시 말해 사회기상(social climate)의 변화를 여러 지표로 만들어 일기예보처럼 알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 지식국가를 지향한다면 거리에서 이런 뉴스가 흘러나오기를 바란다. 『일자리 3% 늘고 생활고 2% 하락, 정치불신도는 다소 진정, 사회적 불쾌지수는 60에서 50으로 낮아지고 사람들간 상호신뢰도 5% 상승, 범죄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생활불안전지수는 점차 상승예정임』.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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