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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75년만의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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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75년만의 해후

입력
1999.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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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선생이 철저히 세속적인 행복을 배척해가며 민족독립 운동에 몸바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헌신적인 뒷받침에 힘입은 바 컸다. 특히 어머니 곽낙원(郭樂園)여사는 백범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다. 그가 안명근의사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내 아들이 평안감사 된 것보다 자랑스럽다』면서 즐겁게 옥바라지를 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아들의 동정을 염탐하러 온 일경에게 호통을 친 얘기는 지금 들어도 속이 후련하다.■백범의 부인 최준례(崔遵禮)여사는 여걸같은 시어머니 그늘에 가려 이름조차 낯설지만 백범선생을 교화시킨 「스승」이기는 마찬가지다. 백범이 출옥했을 때 안악 유지 한 사람이 기생을 불러 위로연을 베풀어 주었다. 한창 취흥이 고조됐을 때 어머니가 백범을 불러내 『기생 불러 술 먹는 꼴을 보려고 네 옥바라지에 고생한 줄 아느냐』고 호통을 쳤다. 부인 최여사가 저 꼴은 못보겠다고 고발한 때문이었다.

■최여사는 지인의 중매로 백범과 혼인했다. 어머니와 교회 선교사들이 권하는 다른 혼처가 있었으나 열여덟 처녀는 첫눈에 반한 서른살 노총각을 택했다. 백범에게도 그 혼사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고 교회에서는 명령에 반발한다고 신부감에게 벌까지 내렸다. 그러나 혼인은 본인들 의사로 결정해야 한다는 두 사람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없었다. 어렵게 약혼에 성사한 뒤 백범은 신부감을 정신여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

■남편 옥바라지와 홀 시어머니 공양에 찌들었던 최여사는 백범의 상하이 망명후 뒤따라 가 잠깐 신혼부부 같은 살림맛을 보았다. 그러나 그 행복은 길지 않았다. 3년만에 낙상을 당해 폐렴을 앓다가 서른다섯 새파란 나이에 속세를 떠나 남의 땅 공동묘지에 묻혔다. 광복후 정릉과 남양주군으로 이장됐던 최여사 유해가 12일 효창공원 백범 유택에 합장됐다. 사후 75년, 백범타계 50년만에 저 세상에서 만난 부부가 이제는 편히 쉴 수 있을까. /문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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