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계절마다 전쟁을 치른다. 변화무쌍한 유행과 패션의 맨앞자리를 놓치지 않기위한 피말리는 다툼이다. 석달마다 맞붙는 그들의 무기는 「세상에 없는 색」. 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다. 계절별 신제품의 주제와 색깔을 고르고 새로운 유행을 창조해 나가는 화장품업계의 전략가다.태평양화장품의 왕석구(43)과장. 2년 전 인력개발실로 옮겼지만 「밍크브라운」과 「트로픽 오렌지」의 신화는 아직 생생하다. 93년 립스틱이 평균 2만~3만개가 팔릴때 「밍크 브라운」의 경이로운 기록 80만개. 전국이 회색 브라운으로 불탔다. 이 때부터 왕과장은 「왕」으로 불렸다. 『사정바람과 경제침체로 사회가 가라앉았을 때였습니다. 회색빛은 그 분위기를 탄 거죠. 화장품 색깔은 해외경향만 믿어선 실패합니다』
나드리화장품의 김태희(33)과장은 『색깔을 사게 만들려면 튀어야죠. 튀는 색을 무난하게 끌어내리는 게 제 일입니다. 자칫 균형을 잃으면 한 시즌을 통채로 잃는 거죠』라고 말한다. 그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오렌지색(「해피 오렌지 Ⅱ」)으로 올 봄 승부를 냈다. 지난 가을 와인색 「립싸인」에 이은 연속히트다. 대학서 클라리넷을 전공했는데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방향을 전환했다. 도쿄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쿨을 마치고 94년 입사, 고속승진한 케이스.
채시라의 메이크업을 전담하는 코리아나 조만철(29)팀장은 업무의 긴장감과 역동성을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교육팀으로 입사했다가 『여사원들만 재미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 당돌하게 자원, 자리를 잡았다. 「초코렛 디오」가 그의 작품.
물론 이들에겐 더 많은 실패가 있다. 『해외 경향은 분명 펄이었는데…』하며 국내에서만 안 통했다는 실패담은 아주 흔하다. 지난 가을 태평양의 「뉴욕 옐로」도 IMF분위기와 동떨어져 처진 경우. 때론 단 5%의 조색비율이, 때론 3~4가지 아이섀도 색을 나눠담는 용기의 모양이 문제였다. 왕과장은 『촬영 배경을 칠하고 모델 뒷바라지만 하던』 좌절의 시기를 회고한다.
유행의 변화를 포착하는 예민한 감각과 다양한 경험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자산이다. 타원형과 원형, 2가지 모양의 트윈 케이크 「유엔씨」는 김과장이 『많은 소비자, 모델들을 직접 만나면서 감각적으로 포착한 아이디어』였다. 메이크업 쇼에서 사물을 치거나 색소폰을 부는 등 화려한 쇼맨십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왕과장도 『수천 수만명의 메이크업 경험이 밑천』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오늘도 「여름 전쟁」을 준비한다. 모두들 『여름이니까 블루계열이겠죠』라고 운만 떼고 입을 굳게 다문다. 5월. 새로운 색깔이 세상에 태어나고 전쟁의 포문이 또 한번 열린다.
글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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