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최고의 기행서「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영어로 출판된다. 너무나 토착적이어서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이 책을 번역해낸 사람은 뜻밖에도 찰스 뮐러(38)라는 미국인. 그가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고 한때 출가했을 정도로 우리 불교에도 정통하며 한국여성을 아내로 맞이한 「알짜 한국인」임을 알게 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영문판「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본책 3권 가운데 경주 관련 내용만 모았다. 출판을 맡은 착장과비평사는 올 가을 국내서점은 물론 인터넷의 사이버서점 아마존을 통해서도 책을 판매, 전세계인들이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에 접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뮐러는 96년 이 책을 처음 읽고 단박에 저자인 유홍준 영남대교수의 팬이 됐다. 미국의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처음 배운 이후 수많은 한국책을 읽었고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영역했지만 한국의 본모습을 이토록 정확하게 밝힌 책은 없었다.
3년간 이 책을 번역하면서 그는 불국사를 새롭게 알게 됐다. 그전에도 몇번 가보기는 했지만 절묘한 가람의 배치와 건물 하나하나에 붙여진 심오한 철학적 명칭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책을 번역하면서 각종 한자명칭을 음이 아닌 뜻으로 번역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뮐러의 고향은 오리건주의 전형적인 농촌마을. 고교를 다닐 때 TV등 매스컴을 통해 소박하고 정이 많은 한국인에 대해 알게 됐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웠고 이것이 인연이 돼 83년 미군 통역병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3년간 복무한 그는 진짜 한국인이 되려면 한국의 철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전남 순천시 송광사에서 행자승 생활을 시작했다. 몇몇 명찰의 선방을 순례하던 그는 보다 체계적인 불교공부를 위해 서울대 철학과와 한림대 동양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땄다.
그가 말하는 한국불교의 매력은 『공산화한 중국에서는 이미 사라졌고 일본에서는 철저히 토착화해 버린 북방불교의 원류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여러 사찰에서 다양한 스승을 모실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그가 불교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는 아내 김진수(34·홍천농고 교사)씨가 훌륭한 불제자였기 때문에 사랑하게 됐다고 말하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딸(4)의 이름도 부처 어머니의 이름대로 「마야」라고 지었다.
한국의 산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미국 산과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박진감이 넘친다』는 게 그의 소감이다. 그가 서울과 안동하회마을 등을 떠돌던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달 강원 홍천군 읍내에 집을 얻어 이사한 것도 자신이 최고의 명산으로 여기는 삼악산과 설악산을 쉽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오리건주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하던 부모가 한국에 다녀간 뒤 「산과 절과 사람이 모두 좋다」며 새로운 삶을 찾은 맏아들을 격려해줬을 때를 잊지 못한다』는 뮐러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 돌아와 훌륭한 불교철학자로 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홍천=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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