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관악경찰서 형사계. 앳된 얼굴의 소년 2명이 고개를 떨군채 경찰관의 질문에 힘들게 말을 이어갔다. 조서에 적힌 이름은 H(15)군과 L(15)군. 서울 모중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사이인 이들은 지난해 10월 옆반 여학생(15)을 교내에서 성폭행하는 등 6개월간 모두 8차례에 걸쳐 욕보인 혐의로 7일 경찰에 붙잡혔다.경찰조서에 적힌 이들의 범행내용은 웬만한 흉악범도 무색케 할 정도였다. 방과후에 피해자를 학교 화장실로 끌고가 성폭행하고,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겠다고 협박해 신고를 막는 등 어른도 흉내내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L군 등은 상습 성폭행범도, 폭력과 비행을 일삼는 불량학생도 아니다. 오히려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들이다. 『K양이 화장실로 순순히 따라와 범행을 저질렀을 뿐』이라고 철없이 말하는 이들은 『성적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고 울먹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는 성적 호기심 외에 「어른들의 무관심」이라는 또다른 동기가 있다는 것이 수사를 맡은 경찰의 시각이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의 주 범행장소는 이혼한 부모와 떨어져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L군의 옥탑방. 이들은 등교하던 K양을 이곳에 끌고 오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또 부모는 물론 학교도 이들이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신성한 배움터안에서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했다」는 섬뜩한 현실을 놓고 많은 어른들은 「무서운 10대」들을 지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재는 무관심과 외면으로 이러한 현실을 잉태하게 한 어른들이 진짜 무서운 군상들일 수도 있다. 이상연기자 kubr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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