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바야흐로 「남성시대」가 돌아왔다. 단순히 「쉬리」에 자극을 받아서가 아니다. 90년대 초반 번성하던 로맨틱 코미디를 밀어낸 멜로.IMF한파로 가뜩이나 서러운 마음을 울렸던 「접속」, 「약속」등 멜로도 흘러가고 빈 자리에 대신 억센 사나이들의 이야기가 들어섰다. 올 초 「태양은 없다」에는 거칠고 지친 남성을 보기 위해 여성관객이 몰렸다. 시작이었다.
◆곧 나올 남성영화들
지금의 「남성영화」는 90년대 중반 「모래시계」열풍 후 반짝하던 깡패이야기만은 아니다. 제주도에서 촬영을 끝낸 「이재수의 난」(감독 박광수)은 민란의 역사다. 5월에 개봉할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감독 유상욱)은 70년의 시공을 넘나들며 죽음과 음모를 파헤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감독 이명세)는 거친 형사의 세계로 돌진한다.
분단현실을 풍자한 「간첩 리철진」도 촬영을 끝냈다. 5월부터 크랭크인할 「주유소 습격사건」(감독 김상진)은 하룻밤 사이에 주유소에서 벌어지는 남자들의 이야기.
여기에 핵잠수함에서의 반란과 위기를 다룬, 여자가 전혀 안나오는 할리우드영화 「크림슨 타이드」같은 「유령」(감독 민병천)도 있다.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을 배경으로 한 박상연의 소설 「DMZ」도 영화(감독 박찬욱)로 기획중이다.
◆무엇이 남성영화인가
우선 거칠고 강한 남자들이 영화를 이끈다. 그들은 사랑의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감성보다는 야성을 보여준다. 「이재수의 난」의 이재수(이정재)나 「유령」의 부함장(최민수)은 카리스마적이다. 그들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대상은 사랑이 아니고 역사와 현실과 일이다.
「인정사정 볼것 없다」의 형사 박중훈은 「~답다」를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관객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타협했던 남성들이 본래의 속성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재수의 난」의 이정재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힘이 넘친다』고 말했다.
이런 주제와 성격이 결합해 섬세함보다는 거칠고 굵은 느낌의 영화가 된다. 당연히 소품이 아닌 20억원 이상 들인 웅장하고 역동적인 대작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강한 남성상의 부각은 결국 가부장적 권위를 강화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김시무씨의 얘기다.
◆왜 지금 남성영화인가
우선 「유행」이란 분석이 많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소재와 장르의 반복. 한국영화의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50년대 남성중심의 전쟁영화에 이은 고전극, 60년대 주먹세계를 다룬 액션물, 70년대 여성들의 손수건을 적신 멜로, 그리고 80년대 코미디와 에로, 그리고 90년대 로맨틱 코미디와 액션, 멜로. 지금이 바로 회귀의 시점이란 분석이다.
여기에는 IMF와 할리우드의 거세진 공세로 커진 우리 영화의 위기감을 다양한 장르로 돌파해 보려는 시도도 한 몫 거들었다. 특히 사회와 가정 양쪽에서 위상을 잃어가는 남성들. 그들에게 스크린을 가득 메운 힘있는 영화, 사나이들의 고독한 투쟁, 영웅적인 이야기는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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