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병폐가 「문전처리 미숙」이었던 적이 있었다. 골문앞까지는 그럭저럭 공격해 오다가 정작 골문을 갈라야 할 시점에 오면 헛발질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요새는 「뒷심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한 것같다. 한국선수들은 전반에는 성난 망아지처럼 잘 뛰다가 후반전에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상대선수에게 몰리다가 전반전에 벌어놓은 것을 다 까먹거나 심지어 역전골을 먹고 패배하기도 한다.현재 우리 정부의 정책추진 상황이 딱 이런 꼬락서니이다. 무언가 할 듯하고 칼을 호기있게 빼들었던 제2차 정부조직개편은 톡톡히 창피만 당하고 물러서고 말았다. 그동안 미약하게나마 간간이 들려 왔던 재벌개혁의 목소리들, 이를테면 기업지배구조의 개혁, 선단경영의 청산 등의 어휘도 이제 신문지상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왜 이처럼 정책추진 과정에서의 「뒷심」이 딸리는 것일까. 아무도 끝까지 정책을 챙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왜곡된 인센티브가 자리잡고 있다.
정책이란 언제나 새로 발표할 때 그 약효가 가장 크기 마련이다. 특히 그것이 과거정권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개혁정책일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 이번 정권에서는 무언가 정말 이루어지는구나』하는 자발적인 찬사와 기대감이 발표자의 머리위로 햇살처럼 쏟아지게 된다.
그러나 그 정책이 과거 정권이 이루지 못한 정책일수록, 다시 말하면 개혁적인 정책일수록 실제 추진과정에서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여러 기득권세력의 반발이 거세게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은」 정책담당자는 적당히 시늉만 하고는 일을 봉합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문제는 「뒷심 부족」으로 정책이 도중하차할 경우 사태가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항생제에 자주 노출된 병원균이 저항력을 갖게 되듯 「뭉치면 산다」는 진리에 힘입어 위기를 극복한 기득권 세력은 개혁에 대한 단단한 저항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새정부가 들어선 이래 여러 개혁이 시도되었다. 그리고 개혁의 초기에 일부는 성공이 가져다 주는 달콤함을 누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전열을 정비한 기득권 세력의 대반격 앞에서 작년에 시작했던 거의 모든 개혁정책이 현재 무력화하고 있다.
마치 전반전에 얻은 선취골을 후반전에서 「뒷심 부족」으로 다 까먹듯이 그나마 있었던 개혁의 성과나 분위기도 급격히 사그러지고 있다. 그리고 제2차 정부조직개편처럼 후반전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한 과제 역시 초장부터 밀리고 말았다.
그나마 현재 개혁의 불씨를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것은 농림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협동조합개혁 정도일 것이다. 단위조합을 통폐합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4개 협동조합중앙회를 통합하여 조직을 슬림화하겠다는 것이 그 골자인 듯하다.
물론 반발은 예상했던 대로 거세게 터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는 신용사업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금융부문을 확실하게 분리해야 하는데 현재의 개혁안은 그렇지 못하다는 상당히 논리적인 반론도 있지만, 통합후에도 내 밥그릇은 계속 보장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상당히 노골적인 밥그릇 타령도 있다.
농림부 역시 지레 겁을 먹은 것인지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중앙회의 본격적인 통합은 몇 년 뒤로 미뤄놓고 있다. 정말로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시늉만 하겠다는 것인지 보기에 따라서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필자는 이번 농림부의 개혁정책이 이 정부의 전체적 개혁정책에 대한 분수령이라고 보고 있다. 만일 여기서도 밀리면 이제 이 정부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