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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부드러운 여경들 힘 물리적 힘보다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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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부드러운 여경들 힘 물리적 힘보다 강해

입력
1999.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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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은 오랜 경찰관 생활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일요일인 이날 축협 노조원 7,000여명이 서울 종로에서 농축협조합 통폐합 반대집회를 열었다. 집회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그런데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노조원들이 질서유지를 맡았던 여경기동대장과 여경들에게 『우리가 소란을 피웠지요? 경비하느라 수고가 많았어요』라며 장미꽃을 한송이씩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집회는 군중심리에 의해 자칫 이성을 잃고 궤도를 이탈하기 쉽다. 그래서 우리 경찰은 선량한 시민은 물론 폭력을 휘두르는 시위자들까지도 다치지 않게 보호하기 위해 집회현장에 출동해 질서를 유지시켜야 한다. 여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더구나 우리의 집회문화는 극렬하기로 세계에 소문나 있다.

이 때문에 1년전만 해도 과격한 집회의 질서를 지키는 일은 우리 여경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달 12일 서울경찰청이 집회질서를 담당하는 여자기동대를 창설했을 때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선배로서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이날 옥천경찰서를 출발, 종로의 집회현장으로 가보니 부드러운 여경들의 힘은 그 어떤 물리적인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시위자들이 여경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이날 시위 노조원들은 집회 도중에 주변 꽃집에서 장미꽃 몇다발을 사왔다는 것이다. 집회를 하면서 여경들에게 꽃을 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우리들을 진정으로 이해했을 것이고, 법질서를 지키며 평화롭게 집회를 마칠 생각을 미리부터 했을 것이 분명했다.

가정화목에 어머니의 역할이 크듯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여성들의 몫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남자경찰관들의 역할로만 여겼던 경비업무에 여경을 투입한 선배 지휘관들의 안목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화염병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여경들의 손에 장미꽃 한송이를 쥐어주는 그 멋진 남자들이 이 사회에 있는 한 우리나라는 밝고 건강할 것이다. 김강자·옥천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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