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총재회담을 계기로 풀릴것 같던 정국이 다시 얼어붙고 있다. 야당은 3.30재보선이 불법선거였다고 규탄하고, 여당은 서상목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총재회담에서 다짐했던 「큰 정치」가 큰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이번 재보선에서 불법·탈법이 난무했다는 보도와 야당의 주장이 모두 사실인지 지금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당이 야당에 비해 깨끗하게 싸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관위가 선거기간중 적발한 선거법위반 건수만 해도 두 여당은 13건, 야당은 1건에 그쳤다. 혼탁한 선거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여당측에 더 무겁다는 하나의 자료다.
말썽이 되고 있는 특위위원 문제만 해도 여당으로서 떳떳한 처사가 아니다. 국민회의는 정치개혁·교육등 10여개의 특별위원회를 통해 구로을과 안양시에서 2만여명의 위원을 임명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선거운동 기간중 당원모집을 금하는 선거법을 피해가려는 편법이었다는 오해를 벗어나기 힘들다.
위원은 당원이 아니니 불법이 아니라고 여당은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한나라당도 특위를 활용하지 그랬느냐』는 말까지 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야당시절의 분노를 잊지말아야 한다. 여당이 된지 불과 1년만에 야당시절 여당에게 당했던 원통한 일들을 까맣게 잊고 과거 여당의 행태를 답습한다면 정권교체의 의미가 없다. 정권교체는 두 공동여당의 힘만으로 이룬것이 아니다.
장기집권의 적페를 몰아내고 정치를 바로세우려면 정권교체를 해야겠다는 국민의 자각이 김대중씨의 당선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국민회의가 「과거의 관행」이라는 구차한 변명으로 정치악습을 되풀이하는 것은 정권교체에 걸었던 국민의 기대에 대한 배신행위다.
여당은 사사건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야당을 이기겠다는 고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권교체를 이뤘다는 긍지와 새정치를 열어가겠다는 포부로 크게 앞을 내다봐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서상목의원 문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세청을 이용해 대기업들로부터 여당의 선거자금을 거둔 소위「세풍사건」은 여당의 표현대로 「국기를 뒤흔든 사건」이다. 엄한 처벌로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도 이의가 없다. 그러나 서의원을 반드시 구속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조건 동의하기는 어렵다.
여당은 야당의 불구속수사 요구를 『국민정서를 무시한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수사관행으로 볼때 서의원의 혐의는 당연히 구속수사해야할만큼 무겁고, 야당이 서의원 체포를 막기위해 다섯차례나 방탄국회를 열어온 것에 대해 비난여론이 강한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서의원 구속이 여야관계를 냉각시켜 산적한 현안을 풀어가는데 방해가 될것이 확실하다면 큰 마음먹고 불구속수사를 못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미 지난해 사정에 걸린 몇몇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불구속수사를 하고 있고, 불구속수사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이기도 하다.
세풍사건을 비롯한 정치인 관련 사건들이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사법부의 판결이 있은후 사면 복권이 남발돼서도 안된다. 법을 엄격하게 집행해야만 정치권의 불법·탈법 불감증과 부정부패를 뿌리뽑을수 있다. 그러나 불구속수사냐 구속수사냐는 논란은 법의 엄정함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서의원이 죄가 있다면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형을 살게 될것이고, 그것이 바로 법의 엄중한 집행이다. 서의원이 감옥에 가더라도 머지않아 사면복권되어 정치무대로 돌아올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있는 분위기에서 불구속기소를하면 법정신이 훼손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론을 오도하는 호들갑이다.
여도 야도 법을 잘 지키고 법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온국민이 법을 잘 지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어느 한 쪽만, 어떤 경우에만 법의 엄중함을 강조하는 것은 효력이 없다. 국민회의가 「서상목카드」를 유용하게 쓰려 한다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국민은 방탄국회에도 신물이 나지만 서상목카드에도 눈살을 찌프리고 있다. 이렇게 다 알려져있는 카드를 쥐고있을 필요는 없다. 서상목카드를 과감하게 버리고, 불구속수사를 받아들임으로서 정국을 푸는 큰 양보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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