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재벌그룹의 몸집(자산기준)이 지난해말 310조9,000억원으로 6∼30위의 대그룹을 다 합친 것보다 2배 가깝게 크다. 한국에는 사실상 현대 대우 삼성 LG SK등 5개 재벌만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들 슈퍼재벌을 바라보는 정부당국의 시각은 담담한 편이다.30대 그룹 현황을 5일 발표한 공정거래위원회는 이같은 사실을 「그저 단순한 사실」로 전하고 있다. 이러한 재벌 판도 변화가 왜 생겼고, 의미는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재벌정책을 세우겠다는 핵심이 빠져 있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준다. 지난 1년간 그토록 재벌구조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질주해 왔는데 5대그룹의 덩치가 오히려 더 커졌다니, 국민으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당혹스러워하는 대신 놀랄 것 없다는 태도다. 이제는 정부내에서 재벌 해체의 문제의식조차 희미해지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한국에서의 「시장논리」란 사실상 재벌의 논리다. 그저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자금면에서 힘이 센 재벌이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환란이후 쓰러지는 업체들이 늘어 기업매물시장에 물건이 많이 나오더라도 시장논리대로 간다면 알짜 매물일수록 굴지의 재벌들이 먹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한국중공업이나 포철등 공기업을 매각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5대그룹 말고 누가 그 막대한 자금을 댈 수 있겠는가. 파는 문제만을 생각하고 사는 쪽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을 갖고 있지 못한 정부의 공기업 매각정책도 5대그룹 덩치를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될 우려가 크다.
금융시장은 어떤가. 아직 재벌의 은행 소유는 불허하고 있지만, 증권 투신 보험 소유는 벌써 오랫동안 방치돼 왔다. 지난해부터는 「국내기업중 믿을 만한 곳은 5대 재벌」뿐이라는 분위기가 금융시장에 크게 확산되면서 시중자금이 재벌로 몰렸다. 일반투자자조차 주식에 투자해도 재벌이요, 채권을 살 때도 재벌 계열사 것만 인기다. 돈이 슈퍼재벌로 집중되고 있다.
시장경제대로 가면 5대재벌만 더욱 살찔 것이다. 이들로부터 한국경제가 균형을 되찾도록 하는 다른 장치들이 필요하다. 최근 삼성물산은 미국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과 손잡고 국내에서 인터넷 서점을 열었다. 아마존은 창고에서 창업해 성공한 벤처다. 국내에선 왜 재벌이 나서야 하는지, 한미간 풍토 차이를 절감하게 된다. 5대그룹이 외형 확대가 아니라 내부 충실도를 키우도록 유도하는 정책대응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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