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의 여는 효과, 갈고리의 끄는 효과" - 파스칼의 「팡세」에서
세계와 나를 배우느라 한참 고투하던 사춘기 시절, 그 시절에 파스칼은 나에게 어두운 얼굴을 가진 천사처럼 다가왔다. 그만한 나이의 소년 소녀들이 다 그렇듯 철학서적을 읽는다는 것은 절반은 허영이다. 내가 「팡세」를 처음 손에 집어들었을 때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글들 사이에서 아주 날카로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생 자체의 처참함으로부터 발성되는 비명을 들었다.
「팡세」에는 아름다운 구절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내 눈은 『열쇠의 여는 효과, 갈고리의 끄는 효과』라는 구절에 붙들렸다. 그 구절을 읽었을 때, 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 퍽, 소리를 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무엇엔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내 어린 영혼은 잠깐 비틀거렸다. 그리곤 어떤 참을 수 없는 말들이 가득 차 있는 입 속의 입이 간절히 오물대기 시작했다. 무언가 알 것 같애. 모르면서도 너무나 잘 알 것 같애. 그런데 더 잘 알고 싶어. 그러나 지금도 나는 그 구절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굳이 해석하고 싶었다면 「팡세」의 주석서를 구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 힘으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알아낸 의미는 파스칼이 그 말을 썼을 당시의 의미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라고. 그 의미는 바로 나 자신의 것이라고.
몇 년 전 문학비평을 쓰면서 그 구절을 인용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는 열쇠의 열기는 지성적 알기이며, 갈고리의 끌기는 직관적 알기라고 해석했었다. 열쇠의 열기는 근대적 인식의 방식이며 갈고리의 끌기는 탈근대적 인식의 방식이라고. 열쇠의 열기, 비밀의 아우라(aura·영기·靈氣)를 상실한 앎, 성(聖)과 속의 단절. 갈고기의 끌기, 비밀의 아우라를 유지시키는 앎, 성과 속의 연속성. 썩 괜찮은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는 어떤 미진한 말들이 법석을 친다. 더 알고 싶어.
내 글쓰기는 열쇠일까, 갈고리일까? 가만히 웅크려 본다. 당신을 열어야 할까, 끌어야 할까?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99년 소월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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