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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경신부] 목수예수 닮은 목수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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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경신부] 목수예수 닮은 목수 신부님

입력
1999.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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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집이 살리는 「살림집」인가, 죽이는 「죽임집」인가, 나는 고민합니다. 이 땅에 집다운 우리 집은 있는가? 이 땅에 정으로 짓고 정으로 사는 「집생활」은 있는가? 새들도 자신의 집을 훌륭하게 짓습니다. 손수 「우리 집 짓기」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이 어설픈 이야기책을 바칩니다」.경북 봉화의 풍락산. 근처로 낙동강이 흐르는 나지막한 산 기슭. 지은지 얼마 안되는 통나무 흙집 한 채. 19.5평의 살림집은 갈대로 지붕을 이었고 낙엽송과 진흙이 벽을 둘렀다. 가톨릭 안동교구에서 오랫동안 봉직했던 정호경(59) 신부의 집이다.

단순과 투박. 겉 모습만 보자면 범상한 시골집이지만 예사롭지 않다. 십 수 년 농민운동에 열성이던 한 신부가 농촌으로 들어와 직접 설계한 후 5년여 손수 주춧돌을 쌓고 대패질, 망치질을 하며 지은 집이다. 신부는 대목쟁이도, 이야기꾼도 못되는 자신이 왜 주제넘게 집짓는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는지에 대해 책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다.

귀농하는 사람들은 많다.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더 이상 세속적이지 않기 위해. 더는 빼앗길 것 없는 세상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누구는 쫓겨나듯, 또 누구는 전원생활의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난다. 풍락산 기슭에서 농사짓는 정신부를 엄밀히 귀농자로 부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68년 신부가 되고 경북 북부지방에서 사목생활을 했다. 70년대 농민 생존권과 민주화 투쟁에 나섰다 두 차례 옥살이를 했고, 80년대 가톨릭농민회 전국 지도신부 노릇도 했다. 그는 이때 결심하고 농촌생활을 꿈꾸었다. 「너무 늙기 전에, 노동할 건강이 있을 때 농사 짓고 살다 죽겠다」고. 행복한 삶이란 「신명을 바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가는 삶」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래서 「입품」 「글품」은 그만 두고 땀흘려 일하는 「일품」으로 살고 싶다고 주교에게 간청, 시골에 둥지를 틀었다.

정신부는 장삿속으로 집장사들이 지은 집은 「돈귀신」 소굴이라 했다. 시멘트 단열재, 유리 따위로 자연과 대기를 차단하는 아파트는 숨통이 막히는 「도시의 공중감옥」이라 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원하는, 분수에 맞는 작고 단순한 집, 그리고 그것을 손수 짓겠다는 세가지 원칙을 정했다.

5년 동안 열정을 바쳐 지은 살림집은 두레방과 화장실, 부엌이 딸린, 그의 표현을 빌면 일간과 헛간이다. 숨쉬는 집을 만들기 위해 낙엽송과 진흙으로 벽을 만들었다.

최근 현암사가 펴낸 정신부의 「손수 우리 집 짓는 이야기」(255쪽)에는 설계에서부터 집터닦기, 우물파기, 목재와 연장 마련, 마름질과 상량, 지붕잇기, 벽쌓기, 수도, 난방, 도배, 등달기, 뜰과 울타리, 원두막과 음식저장간 짓기, 세간살이 마련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그가 그린 삽화, 도면과 함께 꼼꼼히 적혀있다. 총경비는 5,317만 8,800원. 친구신부의 성금이 큰 보탬이 됐다.

그는 농촌으로 돌아가서, 논밭의 노동으로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먹고 난 뒤 여럿이 모이는 공식적인 행사를 피했다. 세상 사람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 언론과 만나는 일도 극구 싫어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교황이 시켜도 안 한다』고 했다. 지금 그는 신부라기보다 유기농을 짓는 초보 농사꾼이고 생전 처음 집 한 채 지어 본 「선 목수」다. 예수도 목수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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