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1845년 매사추세츠주 월덴 숲으로 떠났다. 호숫가 오두막집에서 혼자 살며 농사를 지었다. 경제적 속박에서 벗어난 단순소박한 삶의 자유. 그 실험의 기록은 「월덴 숲속의 생활」이라는 고전으로 남아있다. 그가 2년 후 문명권으로 돌아온 것은 거기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월덴으로 간 것이 도피가 아니었듯. 소로우의 후예들. 현대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을 고발하며 「월덴」으로 돌아가는 지식인들이 많다.국립대(충북대) 철학교수 자리를 내던지고 농사꾼이 된 윤구병(56)씨. 볕에 그을려 눈과 이만 눈부시게 하얀 농사꾼이 다됐다. 전북 부안의 바닷가 마을에서 공동체운동을 하고 있다. 농약 안쓰고 농사짓고, 실험학교를 만들어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놀고 일하면서 가르치고 배운다. 아침 햇살에 눈 뜨고 오전에는 가르치고 오후에는 밭일하고 밤이면 책읽고 글쓰는 삶이 3년 째다.
판화가 이철수(45)씨의 충북 제천 천둥산 박달재 산골생활은 10년이 넘었다. 가족과 함께 농사짓고 산다. 거칠고 전투적인 칼끝으로 민중미술의 선봉에 섰던 그의 판화는 이제 불교적 선의 세계로 이동했다. 『자본주의의 왕성한 소화력에 함락당하지 않으려면 정신무장이 절실하다』
전북 완주 모악산 자락에 둥지를 튼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의 시인 박남준(42)씨.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산 아래 버려진 빈 집으로 들어갔다. 그의 시처럼 끝없이 비우고 버리는 삶을 혼자 버티고 있다.
이들의 선택은 낭만이나 도피가 아니다. 반성에서 출발해 소비적 삶의 방식을 바꾼 결단이다. 「월덴 숲속의 생활」에서 소로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선실에 처박힌 채 항해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인생의 돛대 앞, 갑판 위에 서 있기를 바란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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