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시인에게 김수영은 말했다. 「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이 지배하는 사회. 「자유」는 많았어도 승인받는 것은 「반공」이라는 한 가지 논리 뿐이었던 곳. 기성 체제가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주의를 곡해했던 나라.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반공 자유주의자는 물론이고 근대화를 외치는 많은 사람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주의로 자신들을 포장했다. 그들은 집단이나 공동체보다 개인을 중시했고,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반대하면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구세주처럼 여겼다. 일당 독재에 회의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지지했다는 점에서도 자유주의자이긴 하다. 하지만 그들은 반공이 아닌 자유는 거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장경제를 옹호하고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너무나 치명적인 한계를 가진 「절름발이」 자유자의자들이 숱하게도 많았다.
그래서 나혜석, 김수영, 홍신자 등의 이름은 값진 몫이다. 그들이 여성주의를 표방하며 사회의 변혁을 주장했건, 순전히 개인적인 해방의 몸짓을 보여주었건 진정한 자유주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자도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근대의 첫 무대를 장식한 작가며 미술가 나혜석, 선민의식에 바탕해 오로지 자기만의 자유를 꿈꾸었던 전혜린, 가장 모던한 의식에서 사회비판의 힘을 끄집어낸 시인 김수영. 김현, 최인훈, 마광수, 장선우, 복거일, 그리고 지식인과 정권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게릴라」 강준만. 이 책은 여러 모습으로 자유를 꿈꾸었던 그들의 삶과 행위에 대한 분석이자 비판이다. 개개인의 지향을 읽을 수 있는 10편의 글이 담겨있다.
「한국 자유주의의 열가지 표정」이니 「자유라는 화두」니 심각한 제목이 붙었지만 기실 책의 내용은 제목을 따르지 못한다. 10명의 자유주의자에 대한 소묘나 단상이라 해야 할까. 대중성있는 인물 중에서 「자유」라는 말에 걸맞을 사람을 골라 시도해 본 인물 읽기로 이해해야 할 듯. 총론을 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글이 오히려 가치롭게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쟁과 독재 치하에서 살아 남은 한국의 소수 양심적 자유주의자들이 그렇게 원했던, 권력과 돈으로부터 자기 개인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자유는 새로운 화두로 남아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