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배구 경희대 천하'연 김희규 감독 -『나이 오십줄에 대박이 터졌습니다』.
99슈퍼리그 대학부 우승에 이어 대학배구연맹전마저 거머쥐며 대학배구의 새로운 패자로 등극한 경희대의 김희규(52)감독은 「대박」이라고 표현했다. 한양대와 성균관대에 밀려 감히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던 경희대가 창단 8년만에 줄줄이 우승을 거머쥐었으니 당연한 소리다.
그뿐이 아니다. 김해김씨 감무공파 72대손. 종가집 장손으로 딸만 둘이라 조상 볼 면목이 없었는데 오십줄에 접어든 재작년, 10살 연하의 아내로부터 늦동이 아들까지 봤다. 30일로 만2살이 되는 아들 정호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대박」이라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
그러나 김감독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그의 대박이 행운만은 아니라는 것을. 평생을 신의와 의리로 살아온 사람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라는 것을.
굴곡 많은 삶. 전남 고흥의 만석군 아들로 태어나 뜻하지 않게 시작한 배구. 그러나 77년 명지대를 졸업한 이듬에 그의 선택은 배구가 아니었다. 고향선배의 제의를 뿌리칠 수 없어 사업을 하기도 했고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선거판도 뛰어다녔다. 짧지않은 시간동안 몇번의 전업을 거듭하던 그는 84년 인천영화여실고 감독으로 배구판에 돌아왔다.
잦은 전업은 순전히 의리때문이었다. 친구와 선후배가 『도와달라』면 뿌리치질 못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과감히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다.
「신의를 저버리지 말자」는 신조는 몇년전 선수 스카우트때 효과를 발휘했다. 91년 창단감독으로 경희대를 맡았지만 팀은 지리멸렬이었다. 한양대와 성균관대가 물량공세로 우수선수를 다 걷어들이는 판에 손을 쓸수 없었다. 학교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살던 아파트까지 팔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광주농고 동기동창인 전남사대부고 김광수감독의 도움으로 좌우쌍포 윤관열과 박석윤을 영입할 수 있었다. 평소에 쌓아놓은 인덕의 결과였다. 이 선수들은 올시즌 경희대가 대학최강으로 군림할 수 있게된 밑바탕이 됐다.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선수들에게도 당장의 효과만 생각하지 말고 기초부터 다질것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인생역정을 담아낸 김감독의 지도철학은「대학배구 경희대 천하」가 짧지만은 않을 것임을 웅변한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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