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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특금층시리즈'돈쓸 권리' 있지만 '잘쓸 의무'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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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특금층시리즈'돈쓸 권리' 있지만 '잘쓸 의무' 생각해야

입력
1999.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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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국가 아닙니까. 자기가 번 돈이건 부모가 물려주었건 누구나 내 돈 쓸 권리를 인정해야 합니다』취재중에 만난 한 20대 특금층의 말이다. 부동산업자인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으로 어엿한 레스토랑 사장이 된 그는 유학도 다녀왔고 서구 상류층의 세련된 매너도 몸에 익혔다. 대부분 유학파인 이들은 깔끔한 복장과 점잖은 말투, 세련된 테이블 매너로 무장하고 있다. 오렌지세대의 무분별한 소비를 한때의 촌스런 유행으로 치부하며 『이제 우리나라도 서양의 고급문화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평소 동경에 마지않던 「먼나라」의 소비문화일뿐 그것을 누릴 자격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고스란히 천민 자본주의의 사생아로 등장해 굴곡된 소비의 첨병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그리고 이들 주위에 기생하는 아류적인 소비문화들이 우리 사회의 곳곳을 멍들게 하고 있다.

IMF란 경제국란시기에 오히려 씀씀이가 커진 특금층들의 행태가 가시처럼 돋아나는 것을 감지하면서 이번 취재가 시작됐다. 물론 단기적인 취재가 특금층들의 그릇된 행태를 하루 아침에 없앨 것으로 보진 않는다. 뚜렷한 대안 없이 그들의 행태를 공개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공허한 분노」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취재진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침묵은 더 깊은 나락(奈落)으로 이어진다는게 취재진의 결론이었다. 우리 사회는 수천만원짜리 옷이나 수억원짜리 자동차에 대해 이제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 이미 천민자본주의의 폐단은 너무 일반화 해 진부한 문제로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축재(蓄財)행위를 무조건 비판할 순 없다. 이번 취재의 목표는 「돈 벌 권리」만큼 「돈 쓸 의무」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번 보도에 대해 독자들이 보인 반응은 다양했다. 칭찬도 많고 비판도 많았다. 『센세이셔널리즘이다』 『상속세나 증여세 등 부실한 사회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우선 아니냐』 『무분별한 비판보단 건전한 기부(Donation)문화에 대한 지적이 선행돼야 한다』 등등…. 우리가 정작 고마운 것은 이런 단호한 비판이고 아울러 이에 부응하지 못한 취재진의 한계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또 이모(25·여)씨 등 자료사진에 등장하거나 본의아니게 오해와 불편을 낳은 점에 대해서도 미안함을 금할 수 없다. 이재열기자 jylee@hk.co.kr

미국선 '부의 환원' 재벌전통

97년 6월 미국 뉴욕 브롱크스의 한 고등학교 교사의 죽음은 세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현금카드를 훔치려던 제자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그의 이름은 조너선 레빈(당시 31세). 다름아닌 미국의 미디어 황제 제럴드 레빈 타임워너회장의 아들이다. 조너선은 재벌 2세란 신분을 숨긴 채 뉴욕 슬럼가의 고등학교에서 불량학생들을 상대로 교편을 잡아왔다. 봉급을 털어 밥을 굶는 아이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자상한 선생님이던 조너선은 남긴 것은 싸구려 아파트 한 채와 강아지 한 마리가 전부였다.

『부자로 죽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남긴 말이다. 인생의 반은 부를 쌓는데, 나머지 반은 부를 환원하는 데 써야 한다는 재산사회환원의 「카네기 정신」은 지금도 미국 재벌들의 전통으로 이어져 온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특금층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여전히 「먼 나라」이야기일 뿐이다.

이주훈기자 ju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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