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온화하고 맑은 미소로 다정다감하게 대해주던 유형께서 이제 정녕 우리 곁을 떠나셨단 말입니까. 항상 깔끔한 언행과 단아한 모습으로 영국신사라는 별칭이 잘 어울리던 형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가혹한 자연의 섭리 앞에 그저 망연자실할 따름입니다.돌이켜 보건대 한 인간으로서나 기업가로서 형이 살아오신 생애는 그 자체로 본받아 마땅한 귀감이요, 정도경영의 모범이었습니다.
매사에 신중해 말을 아끼되 한번 한 말씀은 반드시 실천에 옮겼고, 어떤 자리에서나, 어떤 경우에도 중후한 몸가짐을 흐뜨리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선배, 평생의 친구로서 저절로 존경과 믿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어느날 문득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거나 바둑 한수 두자는 말로 우정의 깊이를 확인시키곤 하시던 평소 형의 소탈한 성품과 밤 늦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형과 반상을 마주하고 앉아 바둑두며 세상사를 이야기하던 그 시간들이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형이 남긴 무엇보다도 고귀한 가르침은 사람에 대한 믿음의 철학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의 정신과 의리야말로 년전에 작고하신 고 이장균 명예회장님과의 반세기에 걸친 동업관계를 유지해온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전에 함께 바둑을 두면서 동업에 대해 말씀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6대 4로 투자를 했어도 5대 5로 나눌 수 있으면 동업을 해도 된다』 이 말씀 가운데서 나는, 사람의 관계는 그 시작과 끝이 믿음이어야지 이익의 계산이어서는 안된다는 가름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생전의 형은 사업을 도모하고 추진함에 있어 남보다 한발 앞서서 미래를 꿰뚫어 보는 탁월한 예지를 갖고 있었고, 결단에는 신중하되 한번 결단하면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강한 실천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형의 자유로운 영생과 평안한 안식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끝내 한으로 남았을 실향의 아픔이나 가족과 회사에 대한 모든 수심은 다 거두시고 부디 편히 잠드소서.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이 동찬(李東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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