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면 다」인 세상에 산다. 그런 세상에 살아온지 오래 되었다. 요즘 한국일보가 집중보도 한 「특금층」은 돈이 얼마나 만능인지, 돈으로 어디까지 타락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돈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공개되곤 한다. 돈뿌리기 아니면 선거를 못치르는 고질은 정권이 또 바뀌고 개혁이 또 서슬퍼래도 여전히 제자리다.
돈 싸들고 떴다방 따라 몰려다니는 풍경도 지금 모처럼만에 앙코르 상연되는 중이다. 경제제일주의의 가치관, 「돈이면 다」인 세상이 빚어내는 삽화들이다.
이런 세상에서 누가 있어 「돈이면 다냐?」고 항변한다면, 아마도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제일 시급한 일이 경제회복이요, 그러자면 돈되는 일이 최우선인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식한 사람에 틀림 없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모은 사람들이 있다. 웃음거리도 아니요 무식한 사람들은 더욱 아니다. 교육부의 연구중심대학지원 계획이 실리적인 이공계열에만 집중됨으로써 더욱 고사 위기를 느낀 인문학등 기초학문 분야의 교수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학부제가 확대되면서 일부 인기학과에만 학생이 몰려 인문학 분야는 학과 존폐를 걱정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외부의 연구비 지원도 격감하고 있다.
더구나 최악의 취업난이 겹쳐 대학은 학원화, 취업준비기관화하고 대학의 교육목표도 지나치게 세속화, 공리화하는 현실이다.
한마디로 『철학이 밥먹여 주나?』의 분위기가 일반화 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들은 일제히 구조조정을 요구받는 중이어서 기초학문 분야의 위기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인문학의 위기는 곧바로 대학의 위기요, 학문과 지식의 위기다. 인문학이 고사한다면, 국가경쟁력조차도 그 원천인 힘의 바탕을 잃게되는 것이다.
더구나 학문을 경제적 이익이나 돈의 잣대로 평가하는 정책이 계속된다면, 그 정책이 성공해서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될는지는 모르나 나라의 정신은 영원히 「특금층」의 그것에 머물것이다.
그런데, 인문학의 위기감을 더 가중시키고 있는 논의 한가지가 더 있다.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제안되고 직접 예시된 「신 지식인」이다.
『학력이나 학벌과 관계없이 일상적인 경제활동의 현장에서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사람, 기존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상으로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개선_혁신한 사람』이 「신 지식인」으로 정의된다.
경제위기 탈출이라는 단기적 목표와 창조적 지식기반국가 건설이라는 장기적 목표에 걸맞은 새 인간성의 제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제안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떨치지 못하는 망령이 있다. 바로 경제제일주의, 「돈이면 다」의 이데올로기다.
경제적 효율과 계량적인 이익만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확산되고 그로써 물질위주의 가치관만이 살아남는다면 나라의 정신, 지식인이 지켜온 전통적인 저항과 비판의 정신은 어디에 가서 찾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창조적이고 실물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부가가치와 생산성을 높이는 「신 지식인」 상은 사실 나무랄데 없이 바람직한 제안이지만, 집배원_농민_주부의 예시에서 보듯이 자칫 새마을운동 지도자의 사례에 머물 위험도 크다.
그들의 성공사례는 여전히 성장위주의 개발시대 가치관을 보여준다. 성공만이 강조되고, 돈을 잘 버는 것만이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물질의 풍요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인식, 그러한 「정신」을 국민이 나눠갖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은 국민 모두의 이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모두 충족되고도 모자라는 「무엇」이 남는다는 사실에도 우리의 생각을 모아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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