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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카터와 밀짚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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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카터와 밀짚모자

입력
1999.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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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운동단체인 「인류애를 위한 주거확보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최근 필리핀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짓는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깊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벽돌쌓기에 열중하는 그의 흙묻은 얼굴에는 건강미와 함께 인류애가 가득했다. 카터에 대한 평가는 「실패한 대통령」이다. 그러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난후 그의 활동은 오히려 빛나고 있다. 소박한 지역사회 봉사활동에서 북한핵위기의 물굽이를 돌린 특사로서의 역할까지, 국내외에서 전직대통령으로서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미국에는 살아 있는 전직대통령이 포드, 레이건, 부시, 카터 등 네명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워싱턴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살고자 노력한다. 거의 향리(鄕里)에 돌아가 산다. 물론 그들도 대통령후보 지명 전당대회가 열리면 나와서 연설하고, 대의원 노릇도 하고, 부시같은 사람은 아들의 선거운동을 지원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네명의 전직대통령이 있다. 그들의 고향은 거의 지방이다. 그러나 한결같이 휘발유 냄새 팍팍나는 서울을 떠나지 못한다. 전직대통령들이 주위에 사람을 끌어모으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장래가 어둡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이 권력을 잘못 행사했다는 지적이 아니라 그들의 할 일이 빗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카터」가 필요하다. 필리핀의 오지에 가서 집을 지어줄 것 까지도 없다. 고향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도 있고, 농장이나 어장의 생산활동도 있다. 돈이 있다면 기념도서관을 만들 수도 있다. 프랑스의 지스카르같이 시장이나 시의원이 되는 것도 멋있다. 하다못해 역사적 가치가 있는 회고록이라도 쓸만하다. 『전직 대통령님들이여, 생각의 회로(回路)를 한번 바꿔 보십시오. 여생이 보람있고, 세상사람 모두가 흐뭇해 할 일을 찾으십시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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