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달려 뭍에 다다른 꽃기운이 지리산 연봉을 앞에 두고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그 사이 남녘의 산은 정기를 고스란히 받아 화려하게 봄치장을 했다.「꽃의 산」. 험한 지세로 유명한 지리산이지만 봄 만큼은 새색시 같다. 눈이 녹을 무렵부터 녹음이 짙어질 때까지 거푸 옷을 입었다 벗는다. 동백 산수유 매화 벚꽃 개나리 진달래 철쭉…. 절정은 벚꽃이 아우성하는 이달 초이다.
영남과 호남이 맞닿는 경남 하동군을 비롯, 전남 구례군과 광양시는 남녘의 봄과 마주칠 수 있는 곳이다. 동백과 산수유는 지난 주 쏟아진 굵은 빗발에 이미 빛을 잃었다. 터질 듯 망울을 한껏 부풀린 벚꽃은 꽃샘추위에 잠시 숨을 멈추었으나 이번 주말이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구름처럼 산자락을 덮을 전망이다.
지금은 매화가 만발해있다. 피아골을 곁에 두고 있는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와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의 섬진마을이 매화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두 곳의 매화는 모습이 사뭇 다르다. 송정리의 매화나무는 가파른 골짜기에 심어졌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하동으로 향하는 19번 국도를 타고 토지초등학교 송정분교를 끼고 아스팔트 포장길을 오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매화의 향기가 짙어진다. 약 1㎞. 길이 끝나고 마을이 펼쳐질 즈음 매화나무는 군락을 이룬다. 드문드문 산수유의 노란빛이 간을 맞춘다. 아침나절 지리산 골을 타고 내려오는 안개까지 가세하면 연분홍 매화군락은 꽃의 미학을 뛰어넘어 신비함마저 느끼게 한다.
섬진마을은 「매화마을」로 불리는 곳. 논밭이 적어 가난했던 이 곳 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유실수인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70년전의 일이다. 이제는 흩날리는 꽃발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사진작가와 화가, 문인들이 화려한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벚꽃의 진수는 하동의 화개마을과 쌍계사를 잇는 1023번 지방도로에서 맛볼 수 있다. 「10리 벚꽃길」이라 불린다. 벚나무의 수령은 평균 50년으로 긴 가지가 2차선 도로에 아치를 세운 듯 드리워져 있다. 꽃이 피면 꽃터널이고 꽃이 져 바닥에 앉으면 꽃길이다. 그 황홀한 모습은 「혼례길」이라는 이름을 낳았다.
구례와 하동 사이에 놓인 19번 국도의 가로수도 모두 벚나무이다. 혼례길만큼 아름드리는 아니지만 벚나무의 정취를 느끼는 데에는 손색이 없다.
지리산 남녘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쁨은 섬진강이다. 아직 오염의 아수라에서 벗어나 있는 섬진강은 맑은 물빛만큼 풍부한 서정을 자아낸다. 이따금 지나는 조각배, 펼쳐진 백사장, 강 옆에 도열한 지리산과 백운산의 연봉은 새삼스럽게 「자연의 조화」를 실감케 한다.
/하동=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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