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을, 시흥, 안양등 3개지역의 재·보선이 끝났다. 한마디로 졸렬한 선거였다. 구태의연한 선거악습이 모조리 되살아 나서 유권자들의 혐오감을 부채질했다.정당의 사활이 걸린듯한 과열 선거전, 서로가 불법행위를 했다고 삿대질하는 고소·고발사태, 관권·금권시비와 흑색선전 등 과거의 선거보다 나아진게 없었다.
선거법위반으로 당선자가 의원직을 상실하여 다시 치루게 된 선거에서 여전히 불법·탈법이 춤을 춘다면 희망이 없다.
우리 정치가 과연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능력이 있는가, 그런 능력이 생길 날은 언제인가 라는 답답한 의문을 품게 된다.
여야 지도부의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재·보선이란 지역의 선거일뿐이니 중앙당의 지나친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중간평가」를 내세워 죽고살기식 선거운동을 벌인 그들이 사실은 과열·혼탁의 주범이다.
이회창·조세형·박태준씨등 유세장에서 목청을 높이는 여야 지도자들의 모습은 너무나 희화적이어서 보기에도 괴로웠다.
유권자들도「졸렬한 선거」를 만드는데 한 몫을 했다. 선거분위기가 실망스러웠더라도 투표율이 높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선택이 이루어졌다면 정치권에 팽팽한 긴장이 조성됐을 것이다.
역시 선거는 해볼만 하다는 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혐오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보기만해도 신물이 나는 정치를 외면하는 것으로 겨우 기권에의한 의사표시를 했다.
저조한 투표율은 물론 유권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정권교체로 여야가 바뀌었는데 정치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여당은 과거의 여당처럼, 야당은 과거의 야당처럼 굴고 있다.
과거에 자기가 비난하던 짓을 한술 더 떠서 하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의 모습은 참을수없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혼인말이 오가는 중에 한 쪽에서『우리 집안에 국회의원같은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자랑(?)했다는 「실화」가 있다.
선거를 치룰 일이 없는 조촐한 집안이라는 뜻도 있고, 정치라는 허황된 세계와는 관련이 없는 고지식한 사람들이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집안에 국회의원이 있어서 자랑이 아니라 없어서 자랑이라니 의원들로서는 새겨들을만 하다.
최근 중앙선관위가 선거에 기권하는 사람들에게 5,000원의 과태료를 물리자는 말을 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적이 있다.
기권도 하나의 의사표시인데 무슨 벌금이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낮은 투표율은 선거부정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고, 선거자체를 무의미하게 할수가 있다.
투표율 30%에 50%내외의 지지율로 당선된다면 열사람의 유권자중 두명미만이 그를 지지한 셈이 된다. 후보가 난립할 경우 전체유권자의 10%가 안되는 지지로 당선될 가능성도 있다.
당연히 대표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선거결과를 놓고「삼십몇프로가 지지한 대통령」이라는 시비가 있었으나, 국회의원도 예외일수 없다.
그렇다면 재·보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법원은 선거법위반 소송을 신속하게 처리해서 재선거의 의미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선거무효 판결은 기소후 적어도 1년이내에 끝내야 한다. 국회의원 임기를 겨우 1년 남겨놓고 확정판결을 내놓는 것은 법원의 직무유기다.
그로인해 선거법위반을 처벌하는 추상같은 법정신이 훼손되고, 투표율도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선거를 치루는 엄청난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
현행 선거법에 의하면 남은 임기가 1년미만일 경우 재선거를 치루지 않아도 되는데, 이 규정을 좀 더 신축성있게 운용할수 있다고 본다.
전체유권자 20%미만의 지지로 당선된 선거를 놓고 중간평가에서 승리했다고 기세를 올리는 여당,「중대한 결심」을 했다며 투쟁의지를 불태우는 야당, 국민의 눈에는 모두가 희극이다.
여야는 이런 재·보선의 폐단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선거를 낭비해서는 안된다. 낭비되는 선거는 정치에 대한 환멸을 키울 뿐이다.
대법원 환정판결로 의원직을 잃은 홍준표·이기문의원의 선거구인 송파갑과 계양·강화갑의 선거는 치루지 말자고 합의하는 것, 그것이 지금 여야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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