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미·화가지난해 8월 햇볕이 뜨겁던 그 날, 동강에서 처음 래프팅하던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을 노로 헤치니 강바닥에선 자갈들이 좋아라 깔깔댔고 고기떼는 바위 밑으로 숨었고 다슬기는 고개를 삐죽이 내밀었다.
물은 저마다의 존재를 알리는 향내를 풍겼다. 강물냄새, 숨이 저절로 들이 마셔지던 강물냄새. 고개를 뒤로 젖혀서 깎아지른 절벽의 이마를 보면 절벽은 사랑스런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품속을 헤엄쳐 다니는 소금쟁이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들이 강을 얌전히 내려갈 땐 어디선가 꽃향기, 솔향, 화려한 꿈을 꾸는 나무들의 향기가 우리를 마취시켰다.
노를 저으면서 우리들은 이유없이 자갈들처럼 깔깔댔다. 음울한 50대 후반의 B도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고 웬만해서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S도 예쁜 어금니를 드러내고 소리내어 웃었다.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 모래톱에서 수달처럼 뛰거나 바위 위에 올라 앉아 재롱을 부렸고 비오리처럼 물 속에서 푸드득댔다. 된꼬까리를 통과할 때 우리는 하늘로 튀어 올랐다. 웃음과 스릴과 괴성을 타고.
태양이 나를 정화했는지 나는 자유로워졌고 모든 억압이 달아났다. 거대한 절벽에 뚫린 동굴이 귓볼에 뚫린 귀고리 구멍처럼 작게 보일만치 난 기고만장했다.
자신이 넘쳐 130㎙쯤 되는 파랑새 절벽에서 난 뛰어내리려 했다. 난생 처음으로 동굴을 들여다보았는데 음흉하고 무서운줄 알았던 박쥐는 마스코트처럼 예뻤다. 동강에서 금슬좋게 쌍쌍이 노니는 원앙새는 바람둥이란 걸 알았다.
황새여울에 누워 있던 동굴 슬라이드 버라이어티쇼. 동굴은 장엄하고 화려했고 버섯은 요염했다. 황새여울에 누워 하얀 별의 강을 바라보고 별똥별을 좇았다.
풀벌레소리, 바위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여울의 심포니, 강물로 스며드는 돌돌거리는 물소리, 자리다툼을 하는 바위들의 둔탁한 부딪힘, 산에서 강으로 내려오는 바람소리,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는 수리부엉이의 꼬르륵대는 소리, 두더지와 들쥐들의 잽싼 움직임, 밤늦도록 텐트 안에서 웅성대는 소리, 장작이 타는 소리, 술마시는 소리를 나는 음악처럼 들었다.
마지막 섭새 강변에 다다랐을때 퍼붓던 다이아몬드의 세례. 래프팅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해준 하늘의 선물, 다이아몬드는 소나기였다. 20년만에 찾은 동강에서 나는 잃어버릴 뻔했던 본능을 되찾았다. 오, 내 생애 최고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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