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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무대] 세상이 변해도 '풍자 아니면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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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무대] 세상이 변해도 '풍자 아니면 자살'

입력
1999.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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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현실의 거울.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연극. 바로 연우무대의 연극이다.시인 김수영은 『풍자, 아니면 자살』이라 했다. 「연우」가 풍자의 정신을 포기하는 날, 연우는 스러질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시대를 정확히 반영하는 창작극 노선이다.

『양쪽 밸런스가 안 맞아 이쪽 깎고, 저쪽 깎고 조금씩 깎아 나갔어요…그러다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고, 보니까 그 사람 머리에 피가…빠알갛게 피가…』

극단 연우무대의 「머리통 상해사건」은 이발소가 소재다. 그러나 이 연극의 이발소는 일련의 예기치 못한 사건들의 시발점이다. 극은 내용과 형식에서 상식의 허를 찌른다. 이발 도중 두피를 베인, 어떻게 보면 사소한 사건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증폭되고 왜곡되는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발소의 사건을 우연히 목격한 록 가수는, 그 장면을 스냅 사진으로 고정한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다음 앨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의 자켓 사진으로 쓴다. 졸지에 공적 공간으로 옮겨진 사건의 방향은 이제 제멋대로다. 모방범죄의 속출, 죄 아닌 죄를 자백할 것을 강요하는 경찰, 매스컴의 선정 보도 등이 줄잇는다.

사회에 대해 늘 고성을 유지해왔던 「연우무대」가 90년대 들어 시험하고 있는 「색깔 다양화」의 현재를 본다. 확정적 진실과 거대 담론은 우리 시대에 없다는 것이다. 모두 15장이 1시간 50분 동안 공연된다. 완벽한 암전(black out) 4차례, 여명 같은 암전(silhoutte) 15차례 등 모두 20차례의 암전이 극의 몽환성과 긴박감을 부추긴다.

93년 이후 스태프와 연출 작업으로 연우무대의 관례를 체득해 온 김종연씨의 첫 연출작. 장정일의 「실내극」,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 기형도의 「위험한 가게」등을 연출하면서, 그는 「신진 연우맨」의 선두로 떠올랐다.

일상의 부조리성, 현대인의 정체성 위기 등 최근 연우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연극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달점이다. 이 극에서 배우 시선의 중심점은 객석과 객석이 만나는 지점, 즉 무대의 모서리다.

사방으로 트인 마당극과, 일방으로 양분된 무대의 중간형. 즉 마당극도, 서구극도 아닌 연우의 예술적 지향점을 정확히 반영한다. 또 연우무대 최초로 록 밴드의 배경 음악을 깐다. 「어어부밴드」가 연주한 데이비드 보위류의 첨단적 몽환 음악.

연우무대는 앞으로는 현대인의 존재적 비극성을 응시하기로 했다. 다음 작품으로 준비중인 「발꿈치 가족사(가제)」가 그렇다. 생활고를 못 이겨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최근 사건에서 모티프를 따 왔다.

맹인 동생이 자기 장기를 팔아 무명 가수인 형의 음반을 내려 하는 에피소드가 중심. 극에서는 사회적 배경보다, 둘이 일을 음모하고 타협해 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출 작정. 「머리통…」은 4월 3~16일 문예회관소극장. (02)744_7090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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