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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합당론의 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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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합당론의 허실

입력
1999.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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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동국대 교수·정치사상사여권 일각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론이 여기저기서 들려 온다. 개헌논의를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사들은 양당간의 불신을 없애고 내각제의 유예와 확실한 실현을 담보하는 신뢰관계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합당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낙후성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 합당론은 큰 우려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원칙없는 정략적 합당과 분당은 정당들의 단명화와 이합집산을 야기해 온 근본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에는 서유럽에서처럼 수십년의 전통을 가진 정당들이 전무하다.

이런 까닭에 전문적 지식으로가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친숙한 상징으로 정치노선을 인식하는 대중은 노선인식과 정책판별에서 극심한 혼돈을 겪어 왔다.

이런 처지에서 국민들은 정책인식의 상징을 지도적인 인물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모든 정당은 인물본위 정당이 되었다.

물론 모든 정당을 「초록이 동색」이라고 매도하는 인사들의 흔한 푸념과는 반대로 한국 정당간에도 경향적 색깔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이제 지도적 인물들의 이념적 차이로 각인된 이 인물본위 정당으로부터 색깔있는 정책정당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략적 합당의 구습을 종식시키고 이질적 정당간의 타협방법인 「정당연합」의 합리적 정치관행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서구에서는 유사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대립적인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세우는 것도 결코 금기가 아니다.

정당연합은 정당들이 제각기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손잡을 수 있고 또 공동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개운하게 헤어질 수 있는 점에서 매우 합리적 타협의 정치행위이다. 이 합리적 타협정치 덕택에 서구 정당들은 긴 호흡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념적 유사정당들은 합당과 함께 곧 결속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사랑한다」는 우리 속담이 적격이다.

반면, 이념적으로 상이한 정당들은 손잡을 필요가 있을 경우 각 당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연합」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경우에는 너무 가까이 가면 서로 찔리기 때문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어울린다는 인간의 고슴도치 본성에 관한 니체의 경구(驚句)가 적격이다.

그러나 이념적 이질 정당들이 원칙을 무시하고 정략적으로 「합당」을 한다면, 통합정당 안에서 분파갈등과 원심력이 증폭되어 분열로 귀착되기 십상이다.

이 경우 서로에게서 대립점을 찾는 데 혈안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연합할 경우에는 각 세력이 닮은 점을 찾는 데 열중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정당연합은 서구수준의 정치를 실험한 최초의 합리적 타협의 정치행위이고 이것만으로도 한국정치의 일대 진보이다.

당시 당사자들은 연합과 합당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했었다. 양당간의 연합을 도덕적으로 문제삼는 거듭된 질문에 대해 당시 김대중후보는 「연합」과 「합당」은 다른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이 답변을 빈말로 만드는 최근의 합당론은 정당연합의 합리적 정치행위를 퇴행시키고 이합집산을 다시 초래할 지 모른다. 또 원칙없는 합당은 정략적으로 비칠 것이다.

합당론은 정략적인 측면에서도 불합리할 수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은 2+1=3의 총선결과가 아니라 2+1=1.5의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양당의 지지층은 제각기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일종의 「역사적 블록」이다. 양당이 합당하게 되면 지지세력의 상당수는 이념적·세계관적 실망과 혼돈에 빠져들어 지지를 철회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정당연합 상황에서도 양당의 지지세력들은 시간이 갈 수록 제각기 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합당론은 한국정치의 진보라는 원칙의 측면에서든 정략의 측면에서든 일종의 「자살골」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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