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동강을 지키는 「동강지킴이」 정무룡(43·강원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씨는 평생 고향의 동굴을 탐사한 「동굴박사」다. 천연기념물 260호인 백룡동굴은 백운(白雲)산과 정씨의 이름 마지막 자를 따 붙인 것. 문화재관리국은 그가 발견한 동굴이라서 그런 이름을 붙여주었다.정씨는 26일부터 자연의 친구들(대표 차준엽)과 국회 환경포럼(회장 김상현)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으로 열고 있는 「동강 사진전」에 동굴사진 6점을 출품했다. 전시회는 29일 끝난다.
정씨의 직업은 농부. 학력은 중졸이다. 정씨는 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 한 동굴에 들어가 보고는 아름다움에 빠졌다. 『입구는 초라해도 그 속에는 박쥐 등 온갖 생물에다 종유석과 연못 등이 있어 화려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였다』라고 정씨는 말한다. 살림이 어려워 경북 문경으로 이사갔던 정씨는 76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농사짓는 틈틈이 동굴탐사에 빠져 있던 그는 이 해 어느날 깎아지른 절벽에 난 작은 구멍에서 연기같은 것이 스며나오는 것을 보았다. 로프를 타고 구멍에 접근, 뚫고 들어가 보니 동굴은 끝이 없어 보였다. 자그마치 1,240㎙. 이곳에서 정씨는 선사시대 조상들이 먹었을 지도 모르는 짐승의 뼈와 수많은 종유석들을 발견했다. 정씨는 문화재관리국에 신고를 했고 이 동굴은 79년 12월 백룡동굴이라는 이름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동굴기록은 그의 또다른 직업이다. 처음엔 자동카메라를 사용했지만 이젠 캐논, 미놀타 수동사진기를 다룰 만큼 능숙해졌다. 1년에 보통 100통쯤을 찍었던 동굴사진은 아쉽게도 90년 홍수때 다 잃어버렸다. 로프나 헤드랜턴 등 동굴탐사 장비나 필름을 구입하느라 정씨는 농한기에는 공사판을 찾아 다닌다. 2만평 밭농사를 지어 나오는 2,000만원 수입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못가게 말리던 아내 한영순(韓英順·35)씨는 이제 정씨가 찍은 사진을 현상하기 위해 영월까지 나갔다 온다.
25년동안 동강 인근 200여개가 넘는 동굴을 거의 대부분 탐사한 정씨는 입구가 좁은 동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애를 태운 적도 많다. 『얼굴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입구로 들어갔다가 옷을 다 벗고 3~4시간 씨름한 후에야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이럴 땐 앞이 캄캄해진다』. 돈도 나오지 않고 목숨마저 잃을 수 있는 동굴탐사에 평생을 거는 이유는 뭘까. 정씨는 『동굴 신이 씌인 것같다』는 말로 이유를 대신한다. 97년 동강댐 건설이 고시되면서 반대운동을 해온 정씨는 그동안 일부 주민들의 협박전화도 많이 받았다. 댐이 건설되면 수몰민이 될 정씨는 『댐고시 지역이라 땅을 팔고 떠날 수도 없는 수몰민들은 빚에 쪼들려 어렵게 생활한다 』며 『댐건설 여부가 빨리 결정돼야 주민들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전에 정씨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문화재관리국의 동강유역 동굴 발굴허가를 받아 체계적 발굴을 하는 것이다.
노향란기자 ranh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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