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12월21일 우리 가족이 처음 김포공항에 내린 날이었다. 일요일 밤인데 아무도 마중나와 있지 않아 당황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교환교수로 일할 곳이 한국외국어대라는 사실 뿐이었다.허둥지둥하는 가운데 어떤 신사가 다가오더니 우리 이야기를 듣고는 검은 색 택시는 비싸다며 일반 택시를 잡아 택시기사에게 무어라 이른 다음 우리를 타게 했다.
낯선 신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안고 탄 택시에서 우리는 더욱 따뜻한 정을 느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택시기사는 운전 내내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우리는 불안과 근심을 접어두고 인도어로 대답하고 궁금한 것도 물었다.
서로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웃음보까지 터뜨렸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빌딩과 풍경을 설명해주던 그 기사는 우리 가족이 정확한 발음을 할 때까지 「감사합니다」를 가르쳐주었다. 언어학박사인 내가 느끼기에도 아주 훌륭한 한국어선생님이었다.
택시가 목적지인 학교에 도착하자 그는 차에서 내려 본관 수위실로 가서 내가 소속된 인도어학과 학과장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와서는 내게 건네준 다음에야 떠났다. 우린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택시기사에게 배운 최초의 한국어인 『감사합니다』를 계속했다. 그외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한국생활에서 나의 경험은 그 때 만난 택시 기사와 같은 따뜻한 마음을 주는 한국인으로 가득 채워졌다. 내가 난처한 일에 처할 때마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다가와 따뜻한 마음을 베풀고 가곤 했다.
한번은 혼자서 40㎏이나 되는 짐을 메고 육교를 가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다가와 자기 어깨에 그 짐을 번쩍 메고는 건네다 준 적도 있었다.
나는 인도에 비해 발전된 한국의 모습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인도인과 달리 깔끔하고 계획된 생활습관을 가졌으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국인을 더 좋아한다. 이런 따뜻한 마음씨야말로 내가 한국에서 발견한 첫 「보물」이었다.
/기야남 한국외국어대 교수·인도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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